2013년 5월 8일 수요일

홍콩의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알아보는 분들을 위한 체크리스트

지난 한 달동안 두 명의 한국 분이 홍콩의 대학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정보를 찾다가 본인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게 되었다. 한 분은 직접 이 블로그를 보고 연락하였고, 다른 한 분은 다른 과의 한국인 교수에게 연락한 것을 전해 들었다. 그 두 분의 상황을 들으면서 홍콩대학의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서 학위를 하신 분들에게는 굉장히 낯설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홍콩내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몇 가지 꼭 확인해야하는 사항을 정리해 보겠다.

1. Substantiation
홍콩의 대학들은 Tenure 대신 Substantiation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Substantiation은 Tenure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Substantiation 심사를 통과하면 새로운 계약서를 받는데 계약 종료일이 없다. 한마디로 정년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 대학의 Tenured Professor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표절이나 횡령과 같이 중대한 학교 규정 위반이 없는 한 고용이 보장되는 반면 홍콩 대학에서 Substantiation을 받은 교수는 학교에서 의지만 있으면 짜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그렇게 짤린 사례를 직접 본 적은 없다).

문제는 Non-tenure track position의 경우 계약서나 채용공고에 이 사실을 직접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Substantiation을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빙둘러서 얘기한다. 공식적으로 Tenure라는 표현을 안 쓰니 잘못된 관행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Substantiation이라는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잘 모르겠다면 Department Head나 Dean에게 직접 Tenure-track position이냐고 문의해서 확인하는 게 좋다.

Tenure를 받는 데 필요한 조건이 학교마다 학과마다 다르듯이 Substantiation에 필요한 조건도 제각각 다르다. 홍콩대학에 지원하는 분은 언제 어떤 조건으로 Substantiation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Substantiation심사에는 연구실적 평가가 다른 항목 (teaching, service)보다 훨씬 중요하다. 연구실적이 미진하면 Substantiation 받는게 거의 불가능하지만 논문실적이 괜챦으면 다른 항목은 어느 정도 만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홍콩정부의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홍콩의 중요대학들은 전부 공립이기 때문에 정부의 예산 지원에 크게 의존한다. 홍콩정부가 각 대학의 학생수, 연구실적, 사회기여도를 70:27:3의 비율로 가중치를 두어 평가하여 예산배정시에 반영하는데, 학생수는 학교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각 학교별로 연구실적 향상에 혈안이 된 상태이다. 

또한 명심해야 할 사항은 Substantiation을 받기 위한 요구조건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대학들은 15-20년 전만하더라도 홍콩대와 중문대의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teaching school이었다. 그러던 것이 홍콩과기대의 설립후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면서 홍콩정부가 학교간의 경쟁을 유도하여 모든 학교들이 연구실적 향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결과 Substantiation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연구실적에 대한 기대치가 최근 4-5년내에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본인이 재직 중인 경영대학도 올해 가을부터 승진 기준을 강화하는 내부규정이 확정되었는데 Research, Teaching, Service 세 가지 평가항목 중 Research 항목만 기준이 많이 높아졌다. 게다가 처음 임용될 때의 승진기준에 관계없이 앞으로 승진심사를 받는 모든 사람은 새로운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이런 경향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현재의 심사기준만 믿고 거기에 맞추었다가 막상 Substantiation을 받지 못하는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2. UGC funded position vs. non-UGC funded position
UGC는 University Grants Committee의 약자로 홍콩 정부에서 대학 예산 배정을 담당하는 위원회이다. 홍콩의 공립대학들은 기본적으로 UGC funded program과 self-funded program의 두 가지 학위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자가 정부 예산을 받는 프로그램이고, 후자는 같은 대학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도 정부 예산 지원이 없기 때문에 사립대학처럼 학생의 등록금에 주로 의존한다. UGC funded program은 대부분의 학부과정과 Master of Philosophy (MPhil)와 Ph.D.를 수여하는 대학원과정이 있다. Self-funded program은 non-UGC funded program이라고도 하는데 일부 학부과정과 MPhil과 Ph.D.를 제외한 모든 석사, 박사과정이 여기에 해당된다.

교수 자리를 알아보는 입장에서는 UGC funded position인지 non-UGC funded position 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홍콩 정부의 UGC에서 지원된 예산으로 만든 자리이고, 후자는 대학의 자체 자금으로 만든 자리이다. 학과에 따라 두 유형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몇 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내는 경우가 있다. 첫째, non-UGC funded position으로 임용된 교수의 경우 non-tenure track position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어도 본인이 재직 중인 학과에서 non-UGC funded position은 전원 non-tenure track position이다. 둘째, non-UGC funded position으로 임용되면 홍콩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연구비를 신청하기 어렵다. 매년 홍콩 정부에서 연구계획서를 접수받아 심사한 다음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데 non-UGC funded position의 교수는 Principal Investigator (책임연구자)가 안되고 Co-investigator (공동연구자)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Principal Investigator로 연구비를 따오는 것을 연구실적에 중요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non-UGC funded position의 교수는 연구지원과 향후 실적면에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UGC funded position으로 임용된 교수가 non-UGC funded program에서 강의를 하면 별도의 강의수당을 받는다. 따라서, 가능하면 UGC funded position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Staff Quarters (교수 아파트)
홍콩은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외곽에 28평 아파트 (실평수는 대략 22-23평) 월세가 우리 돈으로 최소 3백만원 정도한다. 교통이 편한 중심지로 오면 월세가 2배 이상 오른다. 따라서, 학교에서 주거지원을 해주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현재 홍콩내 공립대학 중에서 Hong Kong Polytechnic University을 제외하면 모든 학교들이 교수 아파트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University of Hong Kong 처럼 조교수는 입주가 힘든 곳이 있고, City University of Hong Kong처럼 임대료가 주변 시세에 맞추어 매우 높게 설정된 학교도 있다. 그래서, 교수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밖에서 살기로 결정한 경우 보통 월급의 10%를 수당으로 지급한다. 하지만 조교수 월급에서 10%를 추가로 받아봐야 괜챦은 아파트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계약 조건을 따질 때 꼭 교수 아파트를 챙기는 것이 유리하다.

4. Teaching load
Substantiation심사에서 연구실적의 비중이 매우 높으므로 가능하면 강의부담을 줄이는 것이 좋다. 그것이 강의평가를 잘 받는데도 유리하다. 대부분 학교들이 2-2 (매 학기 3시간짜리 2개를 가르치는 것)를 기본으로 하고, 일부 학교에서 3-0 (한 학기에 3시간 짜리 3개를 가르치고, 나머지 학기는 강의 없이 연구만 하는 것)를 기본으로 한다. 물론 추가로 강의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의수당을 받으려고 non-UGC program 강의를 더 맡는 나이든 교수도 있지만, substantiation을 받지 못한 조교수들은 가능하면 기본 시간만 강의하고 한 학기에 두 section을 한 과목으로 몰아서 가르치는 게 유리하다. 물론 어떤 과목을 맡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인터뷰를 할 때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몇 가지 더 홍콩내 대학과 홍콩에서의 생활에 대해 고려해야할 사항을 간단히 정리했다.

1. 정년
홍콩 대학은 정년이 60세인 학교와 65세인 학교로 나뉜다. 대학에서 정년이 된 일부 교수를 단기 계약으로 계속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 그대로 일부 뛰어난 교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장기간 홍콩의 대학에서 근무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년도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계약 조건 협상
홍콩 대학과는 계약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아주 뛰어난 실적을 보인 교수를 스카우트 해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take it or leave it 식으로 나온다. 월급을 올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교수 아파트나 주택 수당과 같은 benefit은 잘 얘기하면 규정의 범위내에서 더 나은 조건을 받아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3. 생활비
앞서 언급한 것 처럼 홍콩의 주거비는 살인적이다. 한 가지 더 부담이 되는 것이 자녀 교육비이다. 홍콩의 공립학교는 초중고등학교는 광동어가, 대학은 영어가 기본언어이다. 따라서 홍콩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은 자녀를 영어를 쓰는 사립학교인 international school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사립학교 초중고 학비가 공립대학 등록금 또는 그 이상이라는 점이다. 초등학교가 한 달에 7-8천 홍콩달러 수준이고 중고등학교는 그보다 더 높다. 방학을 제외하고 1년에 10달 학비를 계산하면 7-8만 홍콩달러 (대략 1만 미국달러)를 내야 한다. 그것도 최근 몇 년간 학교마다 지원자가 많아서 여러 군데 지원서를 내도 받아주는 곳을 찾기가 힘든 형편이다.

4. 세금
홍콩의 소득세율을 상당히 낮다. 최고세율이 18%이니 다른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 따라서 교수의 경우 연간 총소득 (공제전)의 12-15%정도를 세금으로 낸다고 보면 대충 맞을 것이다.

5. 연금
홍콩의 대학에서 근무하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MPF에 자동으로 가입하게 된다. Substantiation을 받기 전에는 매달 소득의 일정비율 (최대 월 HK$1250)을 월급에서 공제하고 같은 금액을 대학에서 추가해서 MPF에 적립한다. 대신 Gratuity라고 해서 계약기간 만료시에 퇴직금 + 계약기간 준수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의 일정 비율 (본인이 재직중인 학교는 15%)를 적립해서 지급한다. Gratuity는 계약기간 중에 사직하면 받지 못한다. Substantiation을 받으면 월급의 일정 비율 (본인이 재직중인 학교는 15%)을 공제하고 같은 금액을 대학에서 추가하여 MPF에 적립한다. MPF는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데 홍콩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나라를 갈 경우에는 일시불로 받을 수 있다.

6. 의료보험
홍콩에는 정부지원을 받는 공립병원과 사립병원의 두 종류의 병원이 있다. 공립병원은 진료비가 거의 무료인 대신 응급환자가 아닌 이상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응급상황이 아니면 사립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게 편하다. 대학들은 사립병원의 진료비와 약값을 의료보험으로 처리해 준다. 전액은 아니지만 80-90%정도를 처리해 주므로 큰 부담은 없다. 재미 있는 점은 한국은 의료보험료을 월급에서 공제하지만, 홍콩 대학들은 기본 의료보험을 월급과는 별도로 지원한다. 따라서 월급에서 의료보험료가 공제되지 않는다. 기본 의료보험보다 보상한도를 높이고 싶어서 별도로 신청하면 추가 보험료를 월급에서 공제한다.

7. 대중교통
본인은 홍콩에서 6년째 자동차 없이 생활하고 있다. 차값이나 휘발유값도 비싸지만, 일방통행이 많고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된 도로 구조에서 운전할 엄두가 안나서이기도 하다. 물론 대중교통이 잘 발달해서 차를 살 필요를 못 느끼는 것도 있다. 급할 때는 우리 돈으로 기본요금 3천원 (HK$20) 하는 택시를 타면 된다. 콜택시 부르면 HK$5 정도만 추가하면 된다. 홍콩은 중국 본토와 연결된 미개발지역을 제외하면 서울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택시요금이 많이 안나온다.


써 놓고 보니 부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홍콩 대학들의 장점을 적는다.

1. 급여
홍콩 대학은 급여수준이 한국보다 거의 두배 정도 높다. 게다가 전공간의 급여 차이가 큰 미국 대학과는 달리 그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일부 전공에서는 홍콩 대학들이 미국의 웬만한 주립대보다 월급을 더 많이 준다. 또한 대학들이 모두 공립이기 때문에 급여체계도 비슷하다. 단적인 예가 호봉표인데 학교별 호봉표를 비교해 본 분이 거의 비슷하더라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따라서, 홍콩의 중하위권 대학들도 국내 최상위권 대학보다 급여 수준이 좋다. 생활비가 높은 것을 감안해도 높은 급여와 낮은 세율은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2. 연구환경
홍콩 대학들은 연구자를 많이 우대해 주는 편이므로 강의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연구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기회는 많다. 연구비 지원도 비교적 후한 편이다. 1년에 최소 2번 이상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학회에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정년퇴임할 때까지 연구를 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이 강하다.

3. 강의환경
영어로 강의를 하지만 학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강의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 학생들 만큼은 아니라도 홍콩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교수 말을 잘 듣는 편인 것 같다.

4. 행정
본인이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쳤기 때문에 한국 대학의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 잡무에 시달리는 지 잘 알고 있다. 다행히 홍콩에서는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된다. 적어도 조교수들에게는 행정일을 거의 안 시킨다. 더구나 외국인인 한국 사람에게는 맡길 수 있는 잡무가 제한적이다.

홍콩 대학의 교수 자리에 지원하는 분들에게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