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0일 금요일

미국발 신용위기의 근본 원인

미국발 신용위기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접하면서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는 정보불균형으로 인한 대리인 문제가 근본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표면적인 측면에서야 주택경기 과열에 속에서 sub-prime morgage를 비롯한 고위험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도 위험에 대한 충분한 관리를 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영자로하여금 그러한 단기적인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치중하게 만든 보상정책과 기업문화를 근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Sub-prime morgage를 비롯한 관련 파생상품들은 대형투자은행에서도 극소수의 인력만이 제대로 이해하고 운영할 정도로 어려운 분야이다. 고위험 고수익 파생상품은 대부분 경제상황이나 기초자산가격이 비교적 예측가능한 범위내에서는 고수익을 보장하지만, 예상과 많이 벗어날 경우 투자자가 큰 손실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정반대로 극단적인 경제상황에서 고수익을 벌어들이는 상품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지만 이런 상품에 투자할 사람은 적고, 투자한다고 해도 극단적인 투기목적이 아니면 헤징목적으로 하는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금융기관 관리자들은 복잡한 금융상품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단기적인 이익에 치중하여 고수익에 따른 위험을 간과할 경우 해당 금융기관의 파산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 . 이러한 예는 Barings Bank를 날려먹은 Nick Leeson이나 Socie'te' Ge'ne'rale을 말아먹은 Jerome Kerviel와 같이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면 왜 경영자들은 이러한 위험을 알면서도 고위험 파생상품에 열을 올린 것인가? 기본적으로 경영자 보상체계가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의 경우 경영자의 보상에서 성과급 (보너스, 스톡옵션, 행사제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문제는 해당 기업의 고수익으로 인한 성과급은 있어도 큰 손실로 인한 책임 추궁은 미미하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소속 은행또는 기업의 부실로 해임을 당한다 해도 두둑한 퇴직보너스를 타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경영자가 보수적으로 위험관리에 나서겠는가? 금융기관 내에서도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낮은 채권이나 보수적인 주식형 펀드 부서들은 찬밥신세이고, 고수익을 내는 파생상품이나 공격적인 펀드 들이 각광을 받도록 보상체계가 되어 있다. 따라서, 왜곡된 보상체계가 단기적인 수익률 중심의 공격적인 투자를 유도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경시하게 만들어 지금의 신용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한마디로 다양한 형태의 정보의 불균형 때문이라 볼수 있다. 경영자와 담당자간의 정보불균형으로 경영자는 고위험 고수익 부서의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기업(은행포함)내의 부서간 정보불균형은 견제와 균형을 어렵게 하였다. 설령 경영자가 고위험 고수익 부서의 잠재적인 위험을 파악하였다고 해도 고수익에 초점을 맞춘 성과체계 때문에 그들 역시 공격적인 투자가 자신들에게 이로웠다.

그럼, 주주들은 왜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일까? 주주들은 단순히 경영자들에게 속아서 이런 시스템을 받아들인 것일까? 문제는 주주들 역시 고위험 고수익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일반적인 주주중심의 경영은 주주와 기업외부의 각종 이해관계자 (채권자, 종업원, 소비자 및 정부)간의 정보불균형으로 인한 대리인 문제에 그다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주주들은 유한책임이기 때문에 고수익으로 인한 주가상승을 그대로 투자수익으로 이어지지만, 대규모 손실로 인한 주가 폭락(심지어 파산)은 최악의 경우 투자원금만 손해보면 그만인 것이다. 심지어는 정부의 구제금융 덕을 보기도 한다. 문제는 수많은 기업 밖의 이해관계자들이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다. 금융기관의 경우 채권자나 종업원 뿐만 아니라 은행대출을 받은 채무자들이나 예금보험과 구제금융 등을 부담하는 일반 납세자에 이르기까지 그 여파가 너무나 방대하다. 그때문에 금융기관의 경우 정부가 다양한 규제를 하고 있지만 이번 신용위기와 같이 투자은행의 경우에는 고위험 파생상품에 따른 높은 자본비율 유지와 같이 충분한 규제가 이루어 지지 못했었다.

한마디로 세상엔 공짜가 없다. 고수익에는 반드시 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경제주체들도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신용위기의 경우 무리한 투자를 유도한 기존 주주들이 그에 따른 손실을 부담하도록 해서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유도 또는 방관하는 시스템을 혁파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경영자들이 위험관리를 경시하고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이 밝혀질 경우 업무상 배임에 대한 손해배상과 같은 책임을 지워야 한다 (물론 현행 법규상 이부분은 입증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부는 앞으로는 금융기관의 규제에 있어서 각종 파생상품으로 인한 위험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판단하여 은행들에게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도록 강제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어느 경제학자가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개념 중에 하나로 incentive를 거론한 게 기억난다 (솔직히 나머지 하나는 잊어버렸다). 경제주체들은 어차피 각종 경제적 사회적 동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따라서, 건전한 시장경제의 유지와 운용에 있어서 올바른 보상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소이다.

2008년 10월 8일 수요일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서

올해 일본에서 노벨상 물리학상 3명 (1명은 일본계 미국인), 화학상 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아내가 부러워하는 걸 보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과학 수준을 간단히 비교해 줬다.

우선 일본은 현대 과학의 출발이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 단적으로 일본은 이미 2차세계대전 당시에 세계 최고수준에 근접한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대 전쟁은 총력전이라서 신무기 개발에 과학기술이 총동원된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과학의 기초도 전혀 없던 시절에 이미 세계 최고수준의 전투기를 개발할 정도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후에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살아남아서 학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물론 인체실험과 같은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지른 작자들이 일본의 의학과 생화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6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걸음마를 시작하였으니 비교 자체가 어찌보면 무리이다.

다음으로 현재의 과학기술 투자를 비교해보자. 오늘 9시뉴스에서도 정부의 투자만 3배, 민간투자를 포함한 총 투자는 10배나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GDP 기준으로 일본은 우리보다 약 4.5배 더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CIA World Factbook). 무역수지나 세계 경제의 영향력 면에서는 그 격차가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지금 이만큼이나마 추격한 것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제약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투자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도 앞으로 10-20년 후에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신용위기로 인한 환율 급등을 보면서

오늘 환율이 1달러당 1395원으로 마감했다. 거의 10년전 외환위기의 여파가 남아있었던 당시 수준이다. 미국의 구제금융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전세계적인 실물경제의 악화로 전세계가 몸살을 않고 있다. 그래도 구매력지수나 수출입 동향을 볼 때 지금의 환율추세는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현재처럼 단 며칠 뒤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달러를 보유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태이다. 지금이야 달러를 보유하고 있어도 당장 며칠 후에 다시 달러가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누가 달러를 내 놓으려 하겠나?

정부의 환율정책이 실패한 것은 재경부 공무원들도 알 정도 인데 대통령과 재경부 장관만 뭘 믿고 버티는 지 모르겠다. 달러 사재기하는 투기세력과 달러를 시장에 내놓지 않는 대기업들을 탓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누굴 탓하겠는가?

외국에서 외화로 월급을 받는 입장이라서 당장의 부담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경기가 하락하면 홍콩 정부에서 임금삭감한다고 나올까 걱정도 된다. 어쨌든 적당한 시기를 봐서 한국에 송금해 두는 것도 좋을 것같다. 당장 가진 현금이 별로 없어서 많이는 못 보내겠지만.

2008년 9월 25일 목요일

산은의 리먼 인수 시도를 돌이켜보면

산은이 리먼 브러더스 인수가 중단된지 몇 주가 지났다. 그 후에 리먼이 파산 신청에 들어가면서 산은의 인수 시도를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산은총재에게 배임이란 표현을 쓰고, 인터넷에선 매국노란 소리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산은의 인수시도를 지지했던 조선일보는 완전히 도매급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럼, 정말 그렇게 잘못된 발상이었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이 기회가 투자은행의 오랜 노하우와 인적자원을 얻을 수 있는 찬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투자은행은 미국과 일부 유럽은행들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금융후진국들에게는 지금이 기회의 시기이다. 단적인 예로 며칠 전 일본계 은행들이 모건스탠리에 투자하고, 리먼의 아시아 지점망을 인수하였다. 중국은행들은 건전하면서도 가격이 많이 떨어진 은행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어제는 파생상품에는 손도 안대던 워렌버핏까지 모건스탠리에 투자를 하고 나섰다.

위의 예에서 설명한 투자은행의 인수와 신규 자금 지원은 모두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둔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체 은행 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부 사업만을 인수한다거나, 워렌의 투자처럼 모건스탠리가 투자은행에서 상업은행으로 변신하고 미정부의 구제금융이 실현된다는 조건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산은도 리먼 인수 논의가 있을때 리먼의 잠재적인 부실이 인수후에 미칠 영향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있었고, 안전한 자산만을 분리하여 good bank만을 인수하려 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듯이 이번 신용위기가 끝나면 금융계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 지금이야 말로 금융후진국인 우리나라에겐 앞으로 최소한 수십년동안 다시 없을 기회의 시기이다. 아쉬운 것은 이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점이다. 아마도 수년후 투자은행 분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일본과 중국계 은행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신용위기에 대한 단상

미국 금융권의 신용위기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요 며칠은 정부의 구제금융안이 의회에서 민주당의 반대로 원안대로 통과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오늘은 부시가 대국민연설로 구제금융의 필요성도 역설하구. 홍콩에서도 Bank of East Asia에서 구체적인 부실이 없는데도 bank run이 일어났다고 한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빨리 이 문제가 수습되길 바란다.

소득세 환급

어제 2005년 2006년 두개 년도의 소득세 일부를 환급 받았다. 지난 주에 한국에서 소득세 환급해 받으라는 통지서를 처가집을 통해 받았는데 국세청 웹사이트에 내 통장번호를 입력했더니 며칠 후에 입금이 된 것이다. 우선 공돈이 생겨서 기분이 좋고 국세청에서 알아서 소득세를 환급해 주니 더 좋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내가 미리 찾아서 환급을 받지 못한 것이다. 내가 그래도 명색이 공인회계사인데 소득세를 알아서 환급받지 못하고 국세청에서 통지해 줘야 알게 되었다는 건 좀 기분이 상한다. 사실 이번에 환급받은 소득세는 모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면서 받았던 소득에 대한 것인데, 조교란 직책이 일종의 비정규직이라서인지 한번도 소득명세서란 걸 받아본적이 없다. 따라서 원천징수를 한 것 같은데 근로소득으로 처리한 건지, 아니면 기타소득으로 처리한 건지, 나아가 얼마를 원천징수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교 주제에 일일이 확인해 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당연히 소득세 종합신고때 신고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인데 아마도 적지 않은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나와 같은 상황이 아닐까 싶다. 소득세 종합신고를 하면 저소득층의 경우 대개 원천징수때보다 더 많은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환급금액이 더 커진다. 따라서, 부당하게 내는 세금을 방지하려면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소득세 종합신고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다.

2008년 3월 21일 금요일

EEE PC 900을 기다리며

아직 출시가 안되었지만 eee pc 900을 기다리고 있다. 3kg가 넘는 헤비급 수준의 노트북을 5년전쯤부터 써왔는데 아무래도 집과 연구실에 모두 데스크탑이 있다 보니 노트북의 의존도가 상당히 낮다. 사실 거의 구석에 쳐박혀 있는 신세다. 말로만 노트북이고 들고 나가면 어깨가 빠질듯한 놈을 사용한 경험 때문에 이동성에 최고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여행이나 평상시에 보조 pc로 사용할 노트북으로 eee pc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인터넷과 오피스를 주로 쓰고 가끔 영화를 볼거니까 충분한 사양일 듯하다.

홍콩에 사는 관계로 이 동네의 용산상가 같은 데 가서 이미 출시된 모델들은 살펴봤다. 역시 제일 큰 문제는 작은 액정과 낮은 해상도 그리고 저장용량이다. 제일 맘에 드는 건 가볍고 작아서 휴대하기 좋다는 거구. 900모델은 4월쯤 발매된다는데 액정이나 해상도, 저장용량의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한 듯하다. 유튜브에 나온 기존 모델과 900의 비교 동영상도 봤는데 크기는 비슷한데 일단 액정과 해상도는 눈에 띄게 좋다. 가격도 리눅스버전이 US$499-600라는데 이정도면 현재 한국에서 시판되는 모델과 비슷한 가격인 듯하구. 홍콩에선 지금도 리눅스버전이 많이 팔리는 듯하다. 그래서, 900이 나오면 바로 리눅스 버전을 사서 xp를 깔아서 쓰려고 계획중이다. 리눅스버전이 저렴하고 어차피 한글 xp와 오피스를 깔아야 하니까.

아직까지 1kg대에서 가격대비 품질로 eee pc와 경쟁할 만한 놈은 없는 것 같다. 컴팩에서 비슷한 무게와 성능의 pc를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있지만 출시는 빨라야 여름이라 한다. 레노버나 델의 12인치 노트북들은 1.6-1.8kg대에 성능은 좋지만 가격이 2배이상이라서 고려대상에서 제외다. 언제 나올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빨리 나와야 방황을 끝내고 일에 집중할텐데. 요즘은 심심하면 출시일자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없나 인터넷을 뒤지고 있으니...

2008년 3월 20일 목요일

영어 교육에 대한 단상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어교육이 중요한 정책사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현 정부의 정책을 보면 방법론면에서는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옳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말과 글을 아끼는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해외 각국과의 교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우리 나라로서는 효율적인 영어교육이 나라의 흥망에 영향을 줄만큼 중요하다. 그럼에도 영어강화라는 방향에 대해 적지 않는 비판이 있어서 나름대로 반론을 제기해 본다.

1. 국민의 대다수는 영어를 배워도 쓸 데가 없으니, 영어에 대한 현재의 투자도 과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지식사회에 진입했다. 한글로 접할 수 있는 정보에 비해 영어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기회를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다.
예를 들어 많은 직장인들이 외국계 회사를 선망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유리한 근로조건 등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외국계 회사의 진입장벽은 바로 언어이다. 내 경우에도 홍콩에서 강의를 하면서 영어를 위해 투자한 수많은 시간들을 지금 보상받는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또한, 국내의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 중에 순수 국내 시장만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당연히 그런 기업에서 성공하려면 해외업무에도 능통해야 하고 영어는 필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해외업무를 하면서 겪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해외업무와 관련없는 일반인들은 직접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 여부는 한 나라의 infrastructure라고 생각한다. Infrastructure는 당장 오늘의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후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2. 일본을 모델로 번역을 활성화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영어에 대한 교육의 효율성을 높인다면 번역보다 직접 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번역을 기다리면 중요한 정보를 남보다 몇 달 늦게 얻게 된다. 더구나 번역은 본래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번역할 시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낫다.
또한, 각종 전문분야의 번역물에 대한 수요도 의문스럽다. 예를 들어 전문서적은 번역을 해도 어차피 그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상당수는 직접 영어로 읽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에 번역본을 구입할 가능성이 낮다.

3. 영어를 강조하면 우리말이 죽는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미국에서 2년을 공부했고 현재 홍콩에서 1년 정도 직장생활 중이다. 하지만, 해외에 나와서 조국의 소중함을 느끼듯이 영어를 공부하면서 우리말의 소중함을 더 깨닫게 되었다. 영어사전을 보면서 올바른 표현을 찾듯이 우리말도 잘못된 표현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영어를 하다 보면 우리말의 특성과 장단점이 더욱 잘 보인다.
오히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학생들이 온라인상에서 잘못된 우리말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맞춤법이 틀리는 것은 예사이고, 소위 말하는 외계어를 늘어놓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국어교육도 문학중심에서 벗어나 어학중심으로 가야 한다. 올바르고 정확한 표현은 언어의 종류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의사소통과 정보의 교류가 원만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에선 인적자원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언어능력은 인적자원 개발에 기본 중에 기본인 요소이다.

2008년 3월 7일 금요일

홍콩 교육 제도

홍콩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영국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초등학교 6년, 중등학교 7년 해서 13년의 교육후에 대학에 진학한다. 유치원도 정부에서 보조가 나와서 많은 부모들이 만 3세부터 자녀들을 유치원에 보낸다. 대학은 일부 순수과학분야를 제외하면 3년제가 정규학부과정이다. 물론 2012년부터 모든 홍콩내 대학에서 학부를 미국식으로 4년제로 바뀔 예정이지만.

여기도 공교육의 품질이 많이 낮아서 비싸지만 외국계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이 많다. 외국계학교는 영국계인 ESF계열의 학교를 제외하면 정부 지원없이 등록금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학비가 매우 비싸다. 일부 국제학교는 대학학비보다 비쌀 정도니 웬만한 서민은 보내기 힘들다. 하지만 거의 모든 국제학교들에 들어가려는 학생수가 엄청나다. 그래서, 외국인과 홍콩인들은 대기자 명단도 따로 있다.

홍콩사람들의 교육열은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 않다. 여긴 좋은 국제학교에 보내려고 유치원때부터 난리다. 특정 국제학교와 제휴가 된 유치원에 보내면 초, 중등과정에서 그 계열 국제학교에 입학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치원, 초중등학교까지 국제학교는 국제학교끼리, 공립학교는 공립학교끼리 서열화가 되어 있다. 대학입시에 대한 경쟁도 만만치 않다. 대학도 서열화가 되어 있고, 우리나라처럼 인문계는 법대, 자연계는 의대식으로 학과마다 선호도가 있기 때문에 대입학원도 꽤 활성화 되어 있다.

사견이지만 교육열은 그 나라의 인구밀집도와 국민의 성취동기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선진국 중에서 인구밀집도가 낮은 미국, 캐나다 및 유럽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인구밀집도가 높은 한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보다 교육열이 낮다. 특히 후자의 국가들은 국민들의 성취동기가 높아서 남들보다 앞서 성공하려는 의욕도 강해서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좁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하니, 남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교육에 올인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이런 투자가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앞으로는 그 투자의 효율을 좀더 높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홍콩 대학의 행정시스템

홍콩과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점 중에 하나는 행정시스템이다. 사실 대학의 행정은 교육과 연구라는 두 가지 대학의 주된 기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 효율성은 한국과 홍콩이 차이가 많이 난다. 홍콩의 행정 시스템은 오히려 2년동안 겪은 미국 대학의 시스템과 유사하다.

홍콩에선 보직교수와 행정직원들이 대부분의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 대학에선 교수가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 행정업무가 진행되기 힘든 형편이다. 예를 들어 교수회의의 경우 홍콩에선 평균 1달에 1번도 안되는 횟수로 회의가 열리고, 의제도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어서 투표를 하거나 의견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 따라서 회의시간도 의제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대신 회의 몇주 전에 의제를 이메일 등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보직교수들간의 회의결과는 이메일로 전체 교수들에게 공지된다.

한국의 경우는 각종 회의가 수시로 열리고 난상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보직 교수가 아니라도 신경써야할 행정업무가 하나둘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교수님중에 행정업무에 교육과 연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문제점은 우리나라 기업들도 비슷하게 가지는 것 같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회의횟수나 시간이 상대적으로 외국 기업에 비해 많은 점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강의 평가

한국에서 한 학기, 홍콩에서 한 학기 강의하고 받은 강의평가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강의 경험은 일천하지만, 아무래도 요즘 한국에서 강의평가로 말들이 많아서이다.

개인적으로 강의평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의평가가 학생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교수의 입장에서도 강의평가는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그리고, 강의를 잘하는 교수님에 대해 포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문제는 어떻게 평가를 하고, 평가결과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이 사용 중인 평가방식은 강의의 품질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지 다소 의문스럽다. 예를 들어 어렵고 깊이있는 내용보다는 쉽게 쉽게 가려는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에 강의의 깊이가 얕아지고 학생들에게 떠 먹여주는 식의 강의가 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인기있는 교수중에는 (특히 학부과정에서) 학문적인 깊이보다는 엔터테이너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일부 교수들은 현행 강의평가를 인기투표에 비유한다.

또한 평가결과를 활용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홍콩학교에선 연구가 성과평가에서 훨씬 중요하게 작용하고 강의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여긴다. 현행 강의평가의 문제점을 인식한 것도 있겠지만, 연구성과에 따라 학교별 예산 지원액이 달라지는 홍콩정부의 정책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홍콩에선 강의평가결과는 해당 교수와 학과장 및 학장 정도만 확인할 수 있고, 다른 교수나 학생은 확인할 수 없다. 얼마전에 외부에서 감사가 나왔는데 원칙에 따라 강의평가는 학과평균점수만 제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비공개원칙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평가결과가 좋은 몇 명에게 포상을 하지만, 나머지 교수들의 평가결과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물론 승진심사들에 참고하지만 미국에서도 연구결과가 훨씬 중요하다.

한국의 일부 대학에서 대외적으로 강의평가결과를 공개했다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가뜩이나 부실한 연구환경에서 강의에 초점을 맞출 경우엔 연구는 뒷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승진심사에 강의평가결과가 들어가면 결국 조교수나 부교수들만 평가점수 높이기에 열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강의조교를 하면서 들은 강의평가 높이는 노하우가 몇 가지 있는데 강의평가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첫째, 학기 첫날부터 불평분자를 내쫓는다. 아무리 강의를 잘해도 매사에 불만이 있는 학생들은 좋은 평가를 내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은 가만히 있고 교수가 모든 걸 자기 머리에 넣어주길 바라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학습하려는 의욕이 없다. 시험점수가 안나와도 자신이 공부하지 않은 것보다 교수가 못 가르쳐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리 불만이 있는 학생들은 겁을 줘서 내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법은 많은 과제나 시험으로 학습의욕이 높은 학생들만 남긴다. 이러면 과제나 시험의 채점부담도 줄어든다. 둘째, 강의는 깊이 있는 내용까지 다루고 시험과 과제는 어렵게 하는 대신 점수는 후하게 준다. 그러면 자신의 노력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고 뭔가 많이 배웠다는 충족감을 느낀다. 실제로 시험점수와 학점과 강의평가간에는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아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강의평가도 좋게 하는 경향이 있겠지만, 학점이 낮은 학생들이 불만을 교수탓으로 돌리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셋째, 중간고사는 쉽게 하고 기말고사는 어렵게 한다. 강의평가를 기말고사 전에 실시하므로 중간고사 점수만으로 학생들은 강의평가를 후하게 준다. 대신 기말고사를 어렵게 해서 학생간의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판별하는 것이다. 시험점수와 강의평가간의 상관관계를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개인적으로 반대하지만 실제로 이 방법을 선호하는 교수도 미국에서 본 적이 있다.

내 경우엔 현재 위의 방법들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강의하는 과목은 1학년 기초 회계학 과목이라서 경영대학 학생에게 필수과목이다. 그래서, 해당과목 코디네이터인 교수가 준비한 동일한 강의노트로 모든 강좌에서 동일한 내용을 가르친다. 시험도 동일한 내용을 한날 한시에 보기 때문에 교수의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다. 아직은 강의경험도 부족하고 홍콩 교수들에 비해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불리한 나는 지난 학기에 학과 평균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우리 학과 평균이 학교 전체 평균을 훨씬 상회하지만...

홍콩에서 겪은 영어

홍콩 사람들의 영어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홍콩에선 영어실력과 소득수준간의 상관관계가 꽤 높다는 느낌을 받는다(한국도 비슷한가?). 고소득층인 화이트컬러와 저소득층인 블루컬러는 영어실력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기업체나 정부조직에서도 고위층은 예외없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경영대학 소속인지라 외부 기업체나 정부 관료들의 특강이 자주 있는데 native speaker수준의 영어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영어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몇 년전에 홍콩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홍콩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길거리에서 영어로 물으면 바로 원하는 답변을 듣기가 어렵다.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젊은 사람들 중에서 대학생이나 직장인 들에게 주로 질문해서 성공률이 높지만. 택시나 버스를 타도 영어로 말하면 못알아 듣는 경우가 많아서 한자로 지명을 적어가는 것이 안전할 지경이다.


10년전에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보통화를 강조하면서 영어 실력이 많이 퇴보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떻게 영국식민지였던 곳에서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가 싶을 때가 있다. 상대적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영어실력이 홍콩인들보다 우수하다.

학교에 있다보니 학생들의 영어에도 자연히 관심이 가게 된다. 사실 학생들의 영어가 생각보다 수준이 낮은 것도 놀라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영어로 수업을 받아서인지 영어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어보이지만 실질적인 영어 구사능력은 다소 실망스럽다. 우선 자신의 의사표현을 쉽게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수업 중간에 질문을 하기 보다는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잦다. 발표를 시켜도 준비된 내용은 능숙하게 말하지만, 조금만 예상에서 벗어나는 질문이나 상황에도 대처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홍콩정부에서 최근 영어 교육에 투자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나라도 영어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라들을 거울삼아 영어교육의 투자도 더 늘리고 효율성도 높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막상 국내에서 외국과의 단순한 업무를 위해 기본적인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을 찾으면 생각보다 드물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같다.

홍콩에 있는 대학들

홍콩에는 정규대학이 7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Hong Kong University (홍콩대학)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중문대학)
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onology (홍콩과기대)
Hong Kong Polytechnic University (폴리유)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시티유)
Hong Kong Baptist University (침례대)
Lingnan University (영남대)
이밖에 우리나라의 방송대에 해당하는 Open University of Hong Kong 가 있다. 한글 대학이름은 내가 영어이름과 한자이름 중에서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것으로 붙인 것이다.

홍콩에 있는 모든 정규 대학들이 홍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모든 대학이 국공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정부는 학과별 정원, 교수 정원, 교수 호봉 등 학교운영의 전체적인 틀에 직접 관여한다. 대신 세부 운영은 학교 재량에 맡겨져 있다. 예를 들어 호봉체계는 학교간에 비슷하지만 초봉을 몇 호봉으로 정할지는 학과에서 결정할 수 있다.

정규대학 중에서 우선 홍콩대와 중문대는 전통의 명문대이다. 원래 홍콩엔 University가 두 학교 뿐이었고, 나머지들은 단과대학 수준이었다가 University로 승격되었다. 그래서 홍콩대와 중문대는 규모나 학생수면에서 단연 최대이고 학과도 한국의 대학처럼 거의 모든 학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학교들은 각각 특화된 학과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과기대는 자연과학과 공학을 중심으로 시작된 학교이고, 폴리유는 우리나라 산업대처럼 공학쪽을, 침례대는 인문사회과학을 중심으로 시작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대학들이 경영대는 기본으로 운영한다. 사실 홍콩은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금융업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업이 주류이기 때문에 공대보다 경영대가 취업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리고, 홍콩정부에서 학과 정원 배정시에 어느 정도 취업시의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여 순수학문쪽의 비중을 학교 설립시부터 제한하는 것은 우리 나라도 본받을 만하다. 홍콩 기업들 사이에는 홍콩정부가 인적자원의 수요 공급 예측과 그에 대한 대처가 늦다고 비판하지만, 수요 공급의 원리를 고려하지 못하고 순수학문의 학과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학교나 정부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대학의 서열화 때문에 난리지만, 여기서는 한국보다 더 명확하게 서열화된 대학구조인데도 비판은 거의 없는 듯 하다. 홍콩 고등학생들은 고교 졸업 1년전에 대학입학시험 같은 걸 치는데 그 점수에 따라 홍콩대, 중문대, 과기대가 최고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그 다음에 폴리유와 시티유, 침례대, 영남대 순으로 좋은 학생들이 지원한다. 물론 학교마다 몇개 좋은 과에는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의 학생이 지원하지만 학교간의 서열은 명확하다.

현재 홍콩의 대학들의 최대 관심사라면 3년제 학부를 4년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원래 영국식 학제를 도입한 홍콩에선 초중고 교육이 13년이고, 대학 학부가 3년 (일부 순수과학은 4년)이다. 이것을 미국처럼 4년제 대학으로 2011-2012학년 (여긴 가을학기가 1학기라서 2011년 가을학기부터 적용)까지 바꿀 예정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도 교수회의 때마다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고 강의실과 연구실을 늘리기 위해 학교 건물도 증축중이다.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교수 채용도 늘어나면 현직에 있는 나에게도 향후 재계약에 좀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한가지 희망도 가지게 된다.

홍콩에서 가르치면서 느낀 점들 (교수)

한국과 홍콩의 교수 사회를 직접 비교하기는 다소 조심스럽다. 한국에서는 박사과정 학생 신분으로 1학기 시간강사를 했지만, 홍콩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경력면에서 아직도 햇병아리 수준이다 보니 일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이라고 믿기 때문에 몇 글자 적어 본다.

교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존경을 받는다. 이 점은 내가 직접 교육시스템을 경험한 세 나라 (한국, 미국, 홍콩)이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르다. 한국이 미국이나 홍콩보다 교수들이 더 대접을 받는다. 물론 최근에는 몰지각한 일부 교수들 때문에 한국내에서도 교수들이 많은 욕을 먹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전반적인 평판은 한국이 나은 편이다.

홍콩도 군사부일체식의 동양적인 사고가 일부 남아 있어서인지 교수는 어느 정도 인정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정치 참여와 같은 사회참여는 그다지 많이 않은 것 같다. 홍콩이 워낙 실리를 추구하는 사회인 탓도 있겠지만, 정치적 자유가 완벽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홍콩에서 교수는 기본적으로 준공무원 신분이다. 모든 정규 대학들이 홍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서 실질적으로 국공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물죄나 각종 부정부패의 경우 공무원에 준해서 처벌받는다. 물론 각종 입학시험등의 제도가 투명해서 뇌물 줄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우리 과의 다른 교수는 이런 예도 말해 주었다. 작년에 홍콩정부 고위 관료가 가라오케에서 여자 종업원과 손잡고 있는 사진이 3류 잡지에 실렸는데 그것 때문에 사임을 해야 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라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외형상"의 도덕성을 공무원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보고도 괜시리 엉뚱한 장소에 갔다가 오해사지 말라고 했다.

한국과 홍콩 교수사회에서 실제로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각자 따로 논다는 점이다. 한국은 점심때는 교수들끼리 여럿이서 우루루 몰려다니는 게 일상적이다. 하지만, 홍콩은 두 세명씩 같이 먹거나 바쁘면 각자 먹는다. 우리 과 학과장 조차도 혼자서 학생식당가서 한국돈 2500원정도의 점심 먹는 걸 종종 본다. 이 점은 홍콩과 미국의 교수사회가 비슷한 것 같다. 더구나 서로 무슨 연구를 하는 지 공저자가 아니면 서로 얘기를 잘 안한다. 연구 아이디어를 교수간에도 도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교수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경우도 있다니 황당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우리 학교는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라서인지 분위기가 나은 편이라고 한다. 일부 학교의 경우에는 교수들끼리 복도에서 만나도 친한 사이가 아니면 인사도 잘 안한다. 특히 일부 고참교수들이 신참교수들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학생대하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홍콩 교수들은 열심히 일한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사실 홍콩 사회 전체가 일중독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교수들은 논문을 써서 좋은 저널에 게재되지 않으면 승진이 안되고 나아가 재계약이 안되니까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 직장인들은 워낙 사내외에 경쟁이 심하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 치열하게 일한다. 한국 노동자들이 실질 근로시간이 길다지만 홍콩보다는 짧지 않을까 싶다. 여긴 서비스업이 주된 산업이라서 대부분의 기업이 시간외 수당도 잘 안주니까.

쓰고 보니 역시 피상적인 비교에 그친 걸 인정해야 겠다. 아마 앞으로 수년 뒤에는 좀더 통찰력 있는 비교가 가능할지도...

홍콩에서 가르치면서 느낀 점들 (학생)

홍콩에서 강의하는 두 번째 학기도 어느덧 절반이 흘렀다. 한국에서는 박사과정중에 시간강사로 한 학기만 강의했으니 강의 경험으로는 이제 3번째 학기인셈이다. 경험많은 교수님들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몇 학기를 가르치다 보니, 자연히 두 나라의 교육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그래서 홍콩에서 가르치면서 학생들에 대해 느낀 점을 적어볼까 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학생들의 태도이다. 홍콩 대학생들은 한국 대학생들에 비해 수동적이란 느낌을 자주 받는다. 미국의 경우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요즘의 한국 대학생들은 수업 중에도 자주 질문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이에 비해 홍콩 학생들의 참여도는 심할 정도로 수동적이다. 한 학기 강의 중에 전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서 답을 받는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발표를 잘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의무적으로 과제 발표를 해야 하는 시간에는 나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영국식 교육시스템을 도입 운영해온 홍콩에서 학생들의 참여가 부진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두번째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잡담이 너무 많다. 한국과 미국의 대학 교육을 경험한 나로서는 홍콩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서로 잡담하는 것에 적응하기 매우 힘들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그런 대화는 묵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반면 홍콩에서는 일상적인 일인 것 같다. 처음에 내 영어를 이해 못해서 서로 물어보는 건가 했는데, 다른 교수님들 말로는 홍콩 학생들이 원래 그렇다니 할 말이 없었다. 교수 입장에서 학생들의 잡담은 집중을 분산시켜서 전체 강의에 악영향을 주는게 사실이다. 더구나 교수에게 질문은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말로 떠들면 정말 답답하다. 나는 앞에서 목아프게 설명하는데 뒤에서 시끄러운 잡음 (광동어는 북경어보다 더 시끄럽다, 이건 본토출신 교수가 인정함)을 일으키면 가끔은 정말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한국 교수님은 홍콩에서 첫 학기때 잡담하는 걸 대놓고 하지 말라고 했다가 강의 평가에서 치명상을 입었다는 소문도 있어서 꾸짖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래도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한국 학생들에 비해 순진한 애들이 많아서 비교적 견딜만하다. 자기들끼리는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지 알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