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이 리먼 브러더스 인수가 중단된지 몇 주가 지났다. 그 후에 리먼이 파산 신청에 들어가면서 산은의 인수 시도를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산은총재에게 배임이란 표현을 쓰고, 인터넷에선 매국노란 소리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산은의 인수시도를 지지했던 조선일보는 완전히 도매급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럼, 정말 그렇게 잘못된 발상이었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이 기회가 투자은행의 오랜 노하우와 인적자원을 얻을 수 있는 찬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투자은행은 미국과 일부 유럽은행들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금융후진국들에게는 지금이 기회의 시기이다. 단적인 예로 며칠 전 일본계 은행들이 모건스탠리에 투자하고, 리먼의 아시아 지점망을 인수하였다. 중국은행들은 건전하면서도 가격이 많이 떨어진 은행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어제는 파생상품에는 손도 안대던 워렌버핏까지 모건스탠리에 투자를 하고 나섰다.
위의 예에서 설명한 투자은행의 인수와 신규 자금 지원은 모두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둔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체 은행 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부 사업만을 인수한다거나, 워렌의 투자처럼 모건스탠리가 투자은행에서 상업은행으로 변신하고 미정부의 구제금융이 실현된다는 조건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산은도 리먼 인수 논의가 있을때 리먼의 잠재적인 부실이 인수후에 미칠 영향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있었고, 안전한 자산만을 분리하여 good bank만을 인수하려 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듯이 이번 신용위기가 끝나면 금융계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 지금이야 말로 금융후진국인 우리나라에겐 앞으로 최소한 수십년동안 다시 없을 기회의 시기이다. 아쉬운 것은 이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점이다. 아마도 수년후 투자은행 분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일본과 중국계 은행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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