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대학내 영어강의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홍콩에서 영어로 강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안 짚고 넘어갈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을 세 가지 글로 정리해 본다. 이 글은 그 첫번째로 영어 강의가 한국 대학에도 필요한 이유이다.
대학들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영어강의의 이유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 배양과 대학의 국제화이다. 사실 둘 다 우리 대학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먼저 영어 능력 문제를 살펴보자. 인문사회계열은 그나마 낫지만 이공계열의 학과생들이 대학에 가면 제일 먼저 당하는 문제가 바로 영어와 수학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영수 위주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왜 또 영수가 문제냐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의 동생은 전기전자제어과 출신이다. 필자가 다닌 경영학과는 학부 전공 과목은 거의 한글 교재를 사용했다. 그런데 동생은 1, 2학년 때부터 영어 교재가 나오는데 이건 내게는 상상초월이었다. 공대생들의 공포라는 공업수학(2학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교재들이 영어로 된, 그것도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었다. 그래서 동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록 오래된 판이지만 번역된 교재를 별도로 보고 있었다. 영어로 된 수학 교재를 동시에 따라가느라 밤샘을 말그대로 밥먹듯이 해도 힘겨운 나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죽했으면 동생이 차라리 중고등학교때 영어책으로 수학을 배웠으면 좀 나았겠다는 말을 했을 정도겠는가?
필자도 학부 고학년부터 하나 둘씩 원서를 보기 시작했고, 석사과정에서는 거의 모든 전공과목에서 원서로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 강의였지만 실제로는 강의 내용 중에 영어 단어가 무수히 난무했고, 우리말은 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예를 들거나 농담을 할 때는 우리 말이 양념 역할을 했지만, 가끔은 차라리 영어로 강의 듣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한 가지 원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 나라 교재들이 상당수가 거의 원서의 번역본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적지 않은 교재에서 글쓰기 (사실은 번역) 수준이 낮아서 나중엔 원서를 보는 게 이해가 더 잘 될 지경이었다.
그럼, 어떤 이는 읽기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말 강의에서 영어 원서를 쓰면 읽기만 가능하다. 하지만, 영어 강의에서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모두 가능하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오랜 문제가 바로 읽기에 비해 다른 영어 활동이 거의 바닥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막상 직장에서 영어로 업무를 보려면 어학연수나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영어는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우면 되지 않느냐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하나 물어보자. 하루에 몇 시간이나 영어를 실제로 쓰십니까? 우리 영어 교육의 문제는 영어 시간 따로, 실제 사용 따로라는 점이다. 영어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에게 영어 쓰는 기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내 교육만으로 영어를 잘하게 된 극소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어에 몰입해서 거의 24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영어만 집중해서 연습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어는 학습 대상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생활 언어로서의 영어이다. 생활속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영어를 쓰기 힘들다. 하다 못해 기본적인 전공 용어도 막상 영어로 써보지 않으면 대화가 안된다.
다음으로 대학의 국제화를 살펴 보자. 우리 나라의 대학의 국제화 수준은 정말 한심한 수준이다. 최근 외국인 교수의 비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지만, 재외교포를 제외한 순수 외국인 교수는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현재 재직중인 대학에서 작년에 박사과정을 졸업하는 학생이 한국의 모대학에서 취업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당연히 그 학생은 필자에게 조언을 구했고, 필자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 했으나 역시나 부정적인 면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급여 수준은 홍콩내 대학에 비해 그다지 좋지 못했고, 대학 행정적인 면에서 외국인 교수를 위한 편의 (예, 영어로 된 공문서와 규정)를 제공받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가족이 있는 그 학생에게 한국어를 못할 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 줄 수 밖엔 없었다.
외국 학생의 비율은 어떤가? 학교마다 저마다 외국 학생 유치에 안간힘이지만, 실제 외국학생들은 어학연수 수준의 한국어 강좌 들으러 온 학생이거나 개도국에서 한국을 배우러 오는 유학생들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높은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오는 외국 학생은 극소수이다. 우리 대학의 수준이 외국 대학에 비해 뒤처진 면도 없지 않으나, 우수한 연구 실적을 올리는 일부 대학의 학과에도 유학생을 찾아 보기는 어렵다. 영어 강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시간 내에 우리말 강의를 따라 오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간 체류하는 교환학생과 한국어를 접하기 힘든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이 들을 만한 강의는 일부의 영어강의를 제외하면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영어 능력 배양과 대학의 국제화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대학 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대학 교육의 근본 목적은 전인적인 인재 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인(Whole Person)이라는 것은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 본다. 그렇다면 영어강의가 대학 교육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왜 필요한가?
첫째, 영어강의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필요하다. 변화에 적응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은 소위 말하는 상아탑과 같은 낡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켜 주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미래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굳이 학술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새로운 지식은 영어로 생산된다. 인터넷에도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영어 이용자들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학문적으로 갈라파고스 현상을 겪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도 본인은 영어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체재 중인 외국인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의 비율도 늘고 있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은 영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소통하지 않는 자는 고립되고, 고립된 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도태된다.
둘째, 영어강의는 학생들에게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가끔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이 영어가 무슨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듣는다. 그러면 나는 간단히 대답한다. "영어를 하면 노는 물이 다르다고." 히딩크는 네델란드 사람이지만 영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감독 생활을 해 왔다. 필자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홍콩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필자의 동생은 가끔 만약 영어만 된다면 해외 유수의 IT 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있을 텐데 하는 푸념을 한다.
지금은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다. 따라서, 인적자원 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엔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 실업률이 최고 수준이다. 필자는 그 대안을 인적자원의 수출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라면, 국내에서의 일자리 부족은 남의 나라 일이다.
셋째, 영어강의는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육에도 좀더 다양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이다.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나갈 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영어강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외국인 교수와 학생을 끌어들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국내에서 좋은 영어강의를 제공하는 것이 비용측면에서 더 저렴하다. 더구나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외로 교환학생으로 나가서 혜택을 보고 있다면 우리나라 대학들도 외국에서 오는 교환학생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상의 설명처럼 영어강의는 한국 대학 교육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영어강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취지는 좋으나 잘못된 실행으로 부작용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현재의 영어강의가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문제는요, 현실에서 모두 영어강의로 바꾼다면 , 물론 영어친숙화에 일조하겠지만, 교수들이 못 따라가요. 학생들도 못따라가고, 인프라가 안 되어 있어요. 왜 지금가지 영어따로, 전공따로 교육을 했을까요? 이유생각 안해보셨나요? 왜냐면 그동안의 교육이라는 것은 그 이념이 고등학교까지는 노동자교육, 대학에서는 등록금장사 수준에서 만족하면 되었기 때문이죠. 고등학교에서 사람때리는 이유가 다 있는 거에요.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때리고 싶은 상황으로 이미 위에서 사전작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고교교사도 인간적으로 주먹이 날라다니며 공멸하게 되는겁니다. 대학에서는 어떤가요? 애시당초 진자 실력을 기르는 차원이었다면 인본주의적 교육이 오갔을 겁니다. 그러나 대학의 주인은 현재 이미 교육권력이라는 놈으로서, 이들의 추구하는 바는 큰교육이 아니라, 지식권력에 불과한 거간꾼집단의 성격인 것인 바, 제대로된 인재가 우연히 나오면 좋은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려먹을 인간재료들은 넘쳐나므로 실질적 인재양성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메카니즘이 현재 대학을 지배하고 있을뿐인데, 뭐가 먹힐까요?
답글삭제저는 대학교육의 목적이 전인교육이라고 생각하고, 그 목적을 위해 영어강의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수, 학생, 인프라 모두 준비가 부족한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현 상황에 안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제가 올린 다른 두 개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답글삭제한국내 대학의 영어 강의가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http://jlee61.blogspot.com/2010/03/blog-post_5458.html)
영어 강의를 처음 준비하는 분을 위한 조언http://jlee61.blogspot.com/2010/03/blog-post_3432.html
우주영웅님처럼 현재의 대학교육이 암울하다고 보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대학을 없앨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대학 다닐때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각 학교마다 묵묵히 학생들을 위해서 고민하고 수고하시는 교수님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럴 때일수록 교수, 학생, 대학 행정부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안 움직인다고 자신도 서있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