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1일 일요일

한국내 대학의 영어 강의가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

한국의 대학에서 영어 강의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나, 실제 운영은 많이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오죽했으면 대학교 영어 강의는 '개그쇼'?라는 글이 온라인에서 주목을 받겠는가? 이 글에서 지적하는 영어 강의의 실태는 한국에 있는 다른 교수님들로부터 대충 들은 얘기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무늬만 영어강의이고 거의 우리말로 강의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학교 측에서 영어로 강의하는지를 감시한다는 소문도 있다. 교수도 학생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안된다. 학생들은 "한글로도 이해가 안되는데 영어로 수업이라니?"라고 불평한다. 심지어 영어로 국문과 강의까지 한다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트위터 ID @sensitive_ego님이 "저희학교는 국문과수업도 영어로 합니다"라고 확인해주셨습니다).

근본원인은 대학의 교육 목적에 바탕을 두지 않은 맹목적인 영어강의 도입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대외적인 목표에 맞춰서 반강제적으로 일정 비율의 영어강의를 도입하고 있다. 교육부나 각종 대학평가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시용에서 시작된 영어강의가 별다른 준비없이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우리말 강의도 근본은 같지만, 영어강의일수록 교육 목적에 기반을 두고 사전에 충분히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영어강의는 단순히 우리말 강의를 통역하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강의내용은 동일하더라도 영어의 특성에 맞게 강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교수들이 강의 내용 준비와 강의 연습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우선 영어강의를 위한 기본적인 언어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다행히 많은 교수님들이 해외에서 학위를 받거나 체류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영어강의를 위한 기본은 되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영어강의 경험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부족한 경험을 메꾸는 방법은 부단한 노력과 준비 뿐이다.

준비를 할 때는 강의내용을 머리로 뿐만 아니라 입으로 몸으로 익숙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사례를 자주 들고, 긴 글보다는 그림이나 그래프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강의노트를 사전에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중간중간에 학생들이 편하게 영어로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질문이나 토론에 칭찬과 긍정적인 피드백은 필수적이다. 구체적인 영어강의 준비방법은 다음에 쓸 글에서 제시하겠다.

둘째,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영어강의에 대한 세밀하면서도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교수가 아무리 준비를 하려고 해도 학교에서 지원이 없으면 힘들다.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에게 강의시간 수를 줄여 주는 것은 기본이고, 가능하면 같은 과목의 영어강의를 같은 학기에 여러 강좌 또는 매년 반복해서 강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재직중인 학교에서 3년째 강의중이지만, 실제 강의한 과목은 회계원리 1, 2 두 과목 뿐이다. 매 학기 같은 과목을 2-3강좌씩 번갈아 가르치기 때문에 영어강의지만 부담은 적은 편이다.

처음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들을 위해서 원어민 교수를 초빙해서 교수법 강좌를 여는 것도 좋다. 필자가 있는 경영대학에서 주관한 적이 있는 사례교육 세미나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영어강의를 한 경험이 많은 교수님이 있다면 그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학교측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의 학과에선 전공 기초과목의 경우 Course coordinator라고 해서 해당 과목을 수년간 가르친 교수가 다른 교수들에게 강의자료와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제도가 있다. 덕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강의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유수의 미국과 유럽대학에서는 처음 강의를 맡는 박사과정 학생이나 신임 교수들이 경험많은 교수로부터 강의노트를 받는 것이 흔하고 심지어 강의 평가가 좋은 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도록 권하고 있다.

아울러 충분한 검토를 통해 어느 과목에 몇 강좌 정도를 영어로 할 지를 정한 뒤 일관되게 매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들도 그에 맞추어 계획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교육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과목에서 영어강의가 더 효과적인 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영어권 국가에서 학문적인 선도를 하고 있는 분야 (경영학이나 공학)는 쉽게 영어강의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국문과나 국사학과 같은 경우에는 특수한 과목 (예, 언어간의 비교와 국가간의 비교)을 제외하면 당연히 우리말로 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가 재직중인 대학에서는 영어강의가 기본이지만 교수회의를 통해 예외적으로 중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사전에 정하고 이를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영대학 내에서는 중국경제론이나 중국의 회계 등과 같은 과목은 중국어로 강의한다.

영어강의는 강좌별 최대 인원을 30명 내외로 제한하여 학생들이 좀더 편안하게 교수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영어강의에서 발표와 토론을 적극 도입하려면 30명이 현실적인 상한선이다. 적은 규모의 강의는 교수에게도 보다 강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학생들에게도 영어강의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학생들의 불만을 수렴해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학점 차원의 혜택을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우리말 강의는 A, B, C, D 학점 비율을 엄격히 제한하는 반면 영어 강의에서는 그 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영어강좌 수강생들이 전체적으로 학점이 잘나오게 배려한다. 아울러 영어 강의를 수강하기 이전에 학생들이 필요한 영어과목을 이수하고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능력을 갖추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 이때 영어과목도 실제 강의시간과 생활에 쓸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연습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학생들도 어린 아이에게 밥먹여주듯 떠먹여주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대학교육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의 전에 미리 교재와 강의노트를 읽어보고 들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습이 복습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대다수의 유학생들이 영어강의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내용이다. 영어는 아는 만큼 들린다.

영어강의에는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보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충분히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교수의 준비와 학생들의 참여가 모두 필요하다. 교수는 발표나 토론의 주제와 관련 자료를 미리 준비해야 하고, 결과를 성적에 반영하는 방법을 결정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학생은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배운다는 기분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 구성원들은 영어강의를 도입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충분한 준비와 면밀한 실행이 없이는 영어강의는 문자 그대로 코미디가 될 수 밖엔 없다. 다음 글에서는 교수가 어떻게 영어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지를 논의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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