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미국 대학 회계학 교수 지원, 심사, 채용, 그 이후"라는 제목으로 세개의 글 (링크 1, 2, 3)을 올렸었습니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조언을 구할 때 마다 해당 글을 꼭 참조하라는 말을 했었는데, 최근 다시 보니 6년 가량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업데이트할 사항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올해 잡마켓에 나온 다른 대학 박사과정 학생의 CV를 검토하고 해준 조언과 함께 제가 느낀 소감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저희 학교에서 채용이 다 끝난 상황에서 연락이 와서 제가 조언을 해 줄 수 있었지만, 그만큼 늦은 상황이라서 제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 경우였습니다.
[이글은 해당 학생의 동의를 받고 올리는 글입니다. 제가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 학생을 아는 분이라면 누구인지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 학생이 누구인지 아는 분들은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제 조언은 개인적인 사견에 바탕으로 한 것이며, 더 나은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지는 이 글을 읽는 분에게 달려있으며, 그 결과도 전적으로 읽는 분의 책임입니다.]
2019년에 올린 글 (위의 링크 참조)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CV는 교수직 지원시에 가장 중요한 서류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지원자들이 학교 측에서 심사할 때 CV에서 어떤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어떤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지원자들의 CV를 검토하다 보면 꼭 필요한 정보가 빠져 있는 경우도 많고, 쓸데없는 정보를 넣어서 괜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실제로 박사과정 학생의 CV를 검토해 주면서 수정을 요청한 사항을 중심으로 CV 작성시 주의할 사항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가 검토한 CV를 작성한 학생은 서울대 박사과정 졸업예정으로 미국에서 학부 교육을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래에 언급한 여러가지 CV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해당 학생의 지적 능력이나 한국적인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부족과 CV를 읽는 사람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 제 글을 읽는 분들도 누구나 비슷한 유형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에서 설명한 수정사항이 반영되기 전과 후의 CV를 직접 보고 싶은 분은 저에게 이메일로 요청하시면 공유하겠습니다. 이 또한 해당 학생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1. 개인정보
해당 학생의 CV 첫 페이지 상단에 본인 이름, 이메일주소, 전화번호가 세 줄로 있었는데, 미국 전화번호를 123-456-7890 과 같은 형식으로 표시했습니다. 이게 무슨 문제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서울대 박사과정생이 Phone number라는 정보없이 위와 같이 번호만 보여주면 이게 전화번호인지, 전화번호라면 한국번호인지 미국번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 학생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지원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미국 국가번호를 추가해서 +1-123-456-7890 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100-200명의 CV를 봐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신경에 거슬리는 CV는 감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이메일로 하기 때문인지 CV에 전화번호를 기재하지 않는 지원자들도 적지 않게 보이는데, 가능하면 미국내 cell phone 번호로 포함시키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잡오퍼 단계에서 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내기 전에 구두로 먼저 오퍼를 주는데 전화번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CV에 전화번호가 있어도 이메일로 전화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화를 주지만, CV에 전화번호가 아예 없는 것은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2. Research Interests
해당 학생의 논문 중에서 Generative AI와 textual analysis를 measurement에 사용하는 논문이 있었는데, CV의 어디에도 그런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Research interests에 "applications of artificial intelligence, machine learning, and accounting data analytics"를 포함시키도록 했습니다. 최근에 많은 학교들이 이 분야의 연구능력이 있는 지원자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원하는 학교에서 특정 분야의 지원자를 찾고 있고, 본인이 하고 있는 연구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면 관련 키워드를 꼭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3. Research
첫째, Job market paper의 abstract가 CV 첫 페이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Job market paper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CV 첫 페이지의 7줄을 abstract로 할애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CV 맨 마지막에 별도의 페이지로 CV에 나온 모든 논문의 abstract를 정리해서 붙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해당 학생은 이미 탑저널에 논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채용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무슨 정보를 얻고 싶을까요?
해당 지원자가 그 탑저널 논문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요? 저라면 RA처럼 단순히 데이터 작업만 한 건지, 아니면 아이디어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지가 궁금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후자라는 것을 표시할 수 있을까요?
해당 학생과 상의하다가 그 논문이 본인의 박사 1년차 논문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Developed from my first-year paper titled ..." 정도만 넣어도 위의 궁금점을 상당부분 해소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습니다.
셋째, 해당 CV는 각 논문별로 Presentation 장소와 연도를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본인의 발표와 공저자의 발표를 구분하기 위해서 위첨자 (Superscript)로 * 와 C를 각각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C의 위첨자는 가독성이 떨어져서 C의 위첨자는 전부 지우고 대신 아래의 문구를 삽입하도록 했습니다.
(*: presented by myself; all others presented by coauthors)
넷째, conference activities를 설명할 때 AAA 나 KAA와 같은 약자를 추가 설명없이 마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KAA (Korean Accounting Association) 같은 약자는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제대로 이해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AAA에서 주관하는 conference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명확히 설명되어 있지 않더군요. 그래서 처음 약자를 쓸때는 반드시 full expression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다섯째, 모든 working paper 들에 "Status: Planning to Submit in the Spring" 이란 문구를 덧붙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job market paper를 제외하고 6개의 working paper가 있었는데 동일한 문구가 있다보니, 솔직히 6개를 모두 내년 봄에 저널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논문 2개 정도는 "Preparing for Submission in Spring 2025"로 바꾸고, 나머지 2-3개는 "Preparing for Submission in Summer 2025"로 바꾸고, 아직 많이 develop이 안된 논문 1-2개는 아예 빼라고 했습니다. 설령 2개를 뺀다고 해도 job market paper까지 합치면 working paper가 5개나 있으니 PhD candidate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working paper가 있으면 논문의 질보다 양을 염두에 두는 지원자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Teaching
첫째, instructor로서 가르친 과목이 managerial accounting이었는데, 제일 중요한 teaching evaluation score가 없어서 당장 추가하라고 했습니다. CV에서 teaching section을 볼때는 어느 과목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지, 그리고 강의평가 점수는 어느 정도 나왔는지를 봅니다. 그래서, 왜 CV에 강의 평가 점수가 없냐고 했더니 teaching statement에는 evaluation score를 넣어 놨다더군요. 이미 제가 2019년에 올린 세 개의 글에서도 설명했다시피, 1st screening은 CV만 보고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Voluntary disclosure theory에서도 나오는 것 처럼 "no disclosure"는 일단 bad news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저희 학교도 그렇지만 많은 학교들이 요즘 data analytics 교육을 강화시키고 있어서, 관련 내용을 managerial accounting에서 가르친 적이 있으면 포함시키면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수정한 버전을 보니, "Planning and Controlling Operations with Excel"을 추가했더군요.
셋째, 1차 수정후에 보니 guest lecturer로서 하루 가르친 과목이 있었는데 teaching evaluation score를 추가했더군요. 그래서, 해당 강의 평가가 본인의 하루 강의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전체 과목에 대한 것이라면 빼라고 했습니다.
5. Conference activities
Conference activities를 conference reviewer와 conference participation으로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후자에 discussion한 것이 포함되어 있고, discussion한 conference에 대해서는 추가로 "(discussion)"을 덧붙인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Conference activities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Conference Discussion", "Conference Reviewer", "Conference Participation"으로 명확히 구분하도록 했습니다. Conference에서 Discussion한 것과 단순 참가한 것은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6. Work Experience
학계로 들어오기 전에 직장 생활 했던 것에 대해 회사명, 기간, 직책과 함께 각 직장별로 3줄씩 중요 활동을 요약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resume에서는 이런 방식이 흔하지만, academic CV에서는 큰 도움이 안됩니다. 특히 심지어 CPA로 Big 4 firm에서 일한 경력도 회사명, 기간, 직책, 업무분야 (Auditing, Tax, or Advisory) 정도만 쓰는 것이 academic job market에서는 흔합니다. 그래서, 직장별로 요약한 활동내역을 전부 삭제하도록 했습니다.
7. Volunteer/Extracurricular activities
해당 학생은 학부 때부터 최근까지 참여한 다양한 Volunteer/Extracurricular activities을 CV에 기재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job application에서는 이것도 중요한 항목이 되겠지만, academic job application에서는 중요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간단히 요약하도록 했습니다.
7. Formatting issues
첫째, 줄간격이 거의 없이 빡빡한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CV에 적을 게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Indentation을 적절히 사용하면 가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조언을 했습니다.
둘째, CV 이곳 저곳에 논문이나 Conference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왜 여기는 링크가 있고 저기는 없는지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출판된 논문과 SSRN에 올라온 논문을 제외하면 전부 링크를 없애라고 조언했습니다.
셋째, 연도나 기간을 표시할 때, "Present"라고만 되어 있고 언제부터 시작인지가 표시되지 않은 경우가 몇 군데 있었서 시작 연도를 첨부하도록 했습니다.
이밖에도 자잘한 formatting issue들이 있었는데 생략하겠습니다.
결과론이지만, 해당 학생은 본인이 가진 논문이나 능력에 비해 다소 아쉬운 학교에서 조교수 자리를 얻어서 교수 생활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제 조언에 따라 CV를 수정하기 전에 이미 대부분의 학교에 지원을 마친 상황이었고, 지원전략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던 케이스였습니다. 만약 좀더 일찍 경험많은 분과 함께 지원서류를 점검하고 제대로된 전략에 따라 지원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공지사항]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회계학 교수직에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게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CV 검토/수정에서부터 Mock Interview까지 도와줄 계획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research/teaching portfolio 및 potential에 비해 저평가되는 것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물론, CV 를 채워넣을 research/teaching portfolio를 만드는 것은 본인의 몫입니다.
한국 학생이라면 출신학교에 상관없이 도움을 줄 생각입니다. 당연히 무료로 도와줄 예정이고, 지원과정에서의 비밀은 철저히 지킬 예정입니다. 대신, 학생쪽에서도 저에게 정보를 숨기는 게 없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 학생이 연락이 오면, 제 나름의 우선순위를 적용할 예정입니다. 다만, 저희 학교에서 신임교수를 채용하는 연도에는, 특히 제가 Recruiting Committee (or Search Committee)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도움을 드리지 못할 것 같으니 양해바랍니다. 그리고, 회계학 이외의 분야는 제 분야가 아니라서 도움을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 글이나 직간접적으로 드리는 조언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나중에 교수가 된 이후에 다른 한국 학생이나 후배 교수들에게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학생이나 후배 교수들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할 수도 있고, 저널이나 컨퍼런스에서 Reviewer나 Discussant를 할 때 한국분들이 부탁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시고, 한국 학생이나 조교수들의 논문은 좀더 시간을 써서 양질의 커멘트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