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4일 수요일

리먼 브러더스와 회계 투명성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조사인이 작성한 파산 원인에 대한 보고서(원문 링크)를 공개되었다. 근본 원인은 예상대로 Sub-prime mortgage loan을 비롯한 파생상품의 위험관리 실패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재무적 부실을 숨기기 위해서 대차대조표 상의 회계조작을 했다는 점이다. Repo 105 거래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부채비율을 목표수치까지 낮추었는데 거래의 실질은 다음과 같다.

1단계, 보유중인 증권을 매각하여 현금을 조달한다. 이때 장부상으로는 매각으로 처리했지만, 담보나 재매입 조건 등을 보건데 실질적으로는 증권을 담보로한 차입거래로 봐야 한다.
2단계, 조달한 현금으로 부채를 상환한다. 거래의 결과 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감소하므로 부채비율이 감소하는 효과를 거둔다. 이런 거래를 결산분기말 며칠 전에 실시한다.
3단계, 다음 분기가 시작되면 곧 새로운 부채를 차입하여 매각했던(실제로는 담보였던) 증권을 다시 매입한다.

이렇게 부외부채로 이용한 금액이 한 분기에 최대 500억달러나 되고, 그 결과 부채비율이 거의 2페센트 포인트 가까이 감소하였다. 더우기 회계감사인이었던 Ernst & Young은 당시 적정의견을 표명했고, 지금도 리먼의 회계처리는 회계기준에 부합되는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국회계기준이 이 부분을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Repo 105 거래가 실질적으로 자산의 매각거래가 아니라 차입거래라는 사실을 감사인이 알았다면 최소한 주석에라도 공시하도록 요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금액의 중요성을 볼 때 주석사항 기재 미비로 한정의견도 줄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Enron은 Special Purpose Entity 로 부외부채를 숨기더니, Lehman Brothers는 Repo 105로 부외부채를 숨긴 것이 드러났다. 회계기준이나 감사기준와 같은 규정에는 허점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그와 같은 허점을 찾으려 하는 경제적인 동기를 어떻게 차단하느냐일 것이다.

관련 기사:
Financial Times: Repo 15에 대한 자세한 설명
New York Times: 파산조사인의 전반적인 보고 내용

추가:
Knowledge@Wharton: 당시 미국회계기준의 제도적 허점과 개선상황에 대한 글입니다. 리먼 브러더스가 당시 미국회계기준상의 부채인식 조건을 교묘히 피해 갔습니다. 현재 미국회계기준은 이런 약점을 해결한 상태라고 합니다.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영어 강의를 처음 준비하는 분을 위한 조언

이 글에서는 영어강의를 처음 준비하는 젊은 교수님들이나 박사과정생들에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사항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저도 아직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고, 좀더 나은 영어강의를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제가 쓰는 얘기는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며, 절대로 영어강의의 왕도는 아니라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필자의 영어에 대한 교육 배경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제 경우를 들어보시면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조금이나마 영어 강의에 자신감을 얻지 않을까 싶어서 입니다. 필자는 솔직히 20대 중반까지 제대로 된 영어로 말하기 듣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학력고사 세대라서 듣기 평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발음도 원어민 교사에 비하면 많이 미흡했지요. 그래서 공군장교로 군복무를 하면서 유학을 염두에 두고 독하게 영어 듣기 연습을 했습니다. 듣기는 혼자서 학습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서 미국에 가서도 크게 애로를 겪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말하기였는데 미국에서 2년간 있으면서도 정말 안 늘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의 특성상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서이기도 했고 소심한 성격탓에 미국학생들과 오랫동안 얘기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세미나 시간에서 논문은 다 읽었지만 원어민 학생들의 토론에 쉽게 낄 수 없었습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하신 적지 않은 교수님들이 필자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듯 합니다. 한마디로 영어로 말하기가 안되는 것입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 돌아와서 박사과정에서 있으면서 영어듣기는 퇴보하는데 영어로 말하기는 더 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박사과정 세미나 시간에는 교수님들이 강의는 거의 하지 않고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필자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강의하시다가 귀국하시면서 당신이 가르치는 모든 박사과정에서도 100% 영어만 사용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경우에는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발표할 때 영어가 더 잘되는 겁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발표나 토론을 할때 원어민 학생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었나 봅니다. 솔직히 원어민 학생들 보면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난무하는 영어의 향연속에서 교수님이나 다른 학생이 내 어눌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신경쓰다가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영어로 말할 때는 그런 현상이 줄어들더군요.

그런 현상은 홍콩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홍콩사람들에게도 영어는 외국어이다 보니 세세한 어법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입니다. 그래서 저도 좀더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었고, 지금은 강의나 논문 발표에 있어서 준비만 충분히 하면 큰 애로없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영어강의를 준비할 때는 철저히 말하기, 그것도 public speech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영어강의 준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 앞서 한 가지 희망적인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도 영어 강의 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제 주변에서 그런 예를 많이 보았습니다. 실제로 한국 유학생 출신 중에 미국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에 강의를 맡거나 졸업후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면서 Teaching award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한국 교수님은 홍콩의 모대학에서 재직하면서 거의 매년 강의평가에서 최고점수를 받아 수많은 Teaching award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분들은 원어민처럼 발음이 굴러가서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어로 강의를 잘하는 한국 교수님들 중에는 Korean accent가 두드러지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차이를 만들까요? 그 분들은 하나같이 복잡한 개념을 영어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능력은 선천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씨가 말하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저 사람은 한국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 선택과 명쾌한 메시지로 유엔의 수장에 오른 것입니다. 필자도 스스로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지 오래입니다. 대신 반기문씨처럼 원어민이 들어도 명쾌하고 설득력있게 말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목표를 정했다면, 실제 강의 준비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1단계: 강의계획
강의계획은 강의 목적과 강의 대상을 항상 생각하면서 세워야 합니다. 강의계획서(syllabus)에는 강의 일정, 교재와 참고자료, 평가방법, 시험과 과제 등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영어 강의에는 항상 외국학생이 들어올 것이다는 전제하에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강의계획서에 학생들이 궁금할 만한 사항들을 가능하면 모두 넣고, 한 학기동안 실천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syllabus와 본인의 교과목 이름을 영어로 입력하면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강의계획서는 가능하면 빨리 공개해서 학생들이 수강신청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강하는 학생들이 미리 영어강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을 매주 강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들의 참여는 영어 능력의 향상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졸업 이후에도 본인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첫 수업시간에 강조합니다. "This is a good opportunity for you to practice giving a presentation. In this class, nobody criticizes your mistakes. However, once you get a job, even a small mistake may damage your career. Where would you like to practice, in class or in the job?"

강의계획서에서는 반드시 '수업시간에는 영어만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서 강의를 하면 교수와 학생 모두 영어를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수업 이후에도 영어 질문만 받는 게 좋지만, 이 부분은 교수님들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우리말 질문을 받으면 수업시간에는 조용하다가 수업 끝나고 질문세례를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2단계: 강의자료 준비
강의자료는 가능하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대부분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말 강의와는 달리 매주 강의에 앞서서 연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충이나마 자료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학기가 진행되면서 소위 말해 하루벌어 하루먹는 (하루 강의준비하고 다음 날 강의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강의자료를 준비할 때는 이용가능한 소스를 총동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다른 교수님들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과거에 영어로 강의한 경험이 있는 교수님의 강의자료를 얻으세요. 꼭 그대로 쓸 필요는 없지만, 강의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음으로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활용하세요. 원서교재가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교수용으로 강의해설서와 각종 참고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대개 파워포인트 파일을 함께 제공하는데 강의에서 파워포인트를 쓴다면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제 경우에는 출판사 파워포인트 파일을 제 강의 목적에 맞게 바꿔서 쓰고 있습니다.

강의 자료를 준비할 때 한 가지 명심할 사항은 너무 많은 내용을 담지 않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교수와 학생 모두 영어 강의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 내용까지 많으면 한마디로 숨이 막히지요. 중요한 사항을 중심으로 덜 중요한 것은 과감히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신, 중요한 내용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수업시간에 적은 내용을 가르칠 수록 강의평가는 더 좋게 나온다고 하시더군요.

강의자료는 본인이 사용할 파워포인트 파일과 강의 노트가 필요하고, 학생용으로 배포할 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파워포인트 파일을 만들고 슬라이드별로 추가로 노트를 작성하여 강의노트로 사용합니다. 학생들에게는 노트가 포함되지 않은 파워포인트 파일을 과목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필요한 추가자료를 함께 공개합니다. 어떤 교수님은 파워포인트에서 설명하기 힘든 내용을 별도로 각 장별 요약 노트로 만들어 제공한다고 들었습니다. 교재와 함께 제공되는 강의해설서의 자료를 활용한 사례입니다.

이런 추가자료들은 영어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경제학과에서 인도 출신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그 분은 정말 인도 액센트를 심하게 쓰셨습니다. 심지어 미국학생들도 못 알아 듣는 부분이 종종 있다고 불평할 정도 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분의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의 강의 노트를 제공했는데 강의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여서 설명을 알아듣기 힘들면 노트를 보고 이해를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시험 기출문제를 모두 노트에 공개해서 학생들이 미리 시험 준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전체 배점의 40-60%는 기출문제를 충분히 이해하면 풀 수 있는 문제여서 낙제는 면할 수 있게 한 반면, 30-40% 정도는 기출문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제를 내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였습니다.

3단계: 강의 연습
영어강의에서는 매주 강의에 앞서서 강의 연습이 필수적입니다. "Practice makes perfect."이란 말처럼 연습만이 좋은 강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엔 강의 전 주말에 파워포인트 파일과 강의노트를 검토하면서 실제 강의를 구상합니다. 이때는 어느 부분을 강조할 지, 어느 부분에서 사례를 들지, 어느 부분에서 휴식시간을 가질 지 등을 검토하고 메모하면 좋습니다. 또한, 학기초에 준비한 파워포인트 파일을 강의용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의 전날이나 강의일 아침에 최소한 1-2시간 정도 리허설을 합니다. 영어강의 경험이 적은 분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소리내서 연습해야 합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은 실제 강의에서 큰 도움이 안됩니다. 가능하면 서서 하는 것도 좋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원어민 앞에서 리허설을 해보고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동영상 촬영과 원어민 강사의 협력을 지원한다면 더욱 좋겠지요.

시간이 충분하다면 두 번 리허설 하는 것이 좋습니다. TV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대본 읽기와 현장 리허설을 나눠서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첫번째는 파워포인트 파일을 그냥 소리내서 읽습니다. 이 단계는 각종 용어를 입에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두번째는 실제로 강의하듯이 파워포인트에 없는 사례나 추임새를 넣어가면서 연습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파워포인트를 읽으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강의중에 파워포인트는 참고사항이지 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려면 모든 내용을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서 설명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강의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강의의 핵심입니다. 이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리허설 과정은 영어강의를 자주 하지 않는 교수님들에게 더욱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거의 같은 과목을 영어로 강의한 지 벌써 3년이 되가지만, 리허설을 충분히 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은 강의의 품질면에서 차이가 큽니다. 특히 월요일 강의는 그 격차가 더 큰 데, 주말에 가족과 우리말을 하다가 월요일에 갑자기 영어를 하기가 쉽지 않아서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의할 때 최선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강의 전날은 무리한 음주나 가무를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은 우리말 강의를 수십년동안 해오신 과목이었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한결같이 강의 전날 또는 당일날 아침에 강의 내용을 검토하곤 하셨습니다. 생활 패턴을 강의 스케줄에 맞추어 강의에 영향을 줄만한 약속은 가능한한 그 전날에 잡지 않으셨습니다. 제자 교수가 다음 날 강의가 있다면서도 밤늦게 음주를 하는 모습을 보시면 "X교수, 이러면 타락한거야."라고 조용히 꾸짖으셨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마치 강의를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것처럼 여기셨습니다. 영어강의는 우리말 강의보다 몸상태나 집중력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4단계: 실제 강의
실제 강의에 들어가면 자신감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신감은 많은 연습과 경험에서 나옵니다. 교수가 자신있게 가르치면 다소간의 어법상의 오류는 듣는 학생에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특히 첫 강의가 중요한데 한 학기동안의 계획과 영어강의의 필요성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수 스스로 자신의 영어실력과 영어강의 경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학생들 앞에서 인정하고 대신 함께 노력하자는 식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아울러 학생들과의 소통의 창구를 항상 열어놓아야 합니다. 질문하는 학생에게는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다소 실수하는 학생에게는 더욱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칭찬은 아무리 해도 모자랍니다.

저는 생애 첫 강의를 영어로, 그것도 석사과정 학생들에게 회계학 기초를 가르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습니다. 학부에서 회계학을 한번도 수강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회계학 기초를 가르쳤기 때문에 우선 제가 강의내용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석사과정생이라서 동기부여도 잘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강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학생도 7명 뿐이라서 마치 후배들과 세미나실에 모여서 토론하는 식으로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오래산 교환학생이 있어서 종종 제 영어를 듣는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의 강의가 평생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5단계: 강의 결과 검토
영어 강의를 하면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솔직히 되새기기 싫은 정도의 형편없는 강의일수도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반성이 필요합니다. 계획했던 것과 실제 강의가 어떻게, 왜 달랐는지 비교하고 어떻게 하면 다음 강의에서 좀 더 나은 강의를 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수업 중간 중간에는 물론이고, 수업 끝나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영어로 된 강의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지, 발음이나 액센트에는 문제가 없는 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 못한다면 그것이 영어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강의를 받으면 학생들의 대표적인 불만은 '영어를 못 알아 듣겠다'입니다. 모든 불만이 교수의 영어실력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막상 원어민 학생에게 영어를 못 알아 듣겠느냐고 물어보면, 가끔 이상한 표현이 있지만 의외로 알아들을 만하다는 반응이 많을 겁니다.

그럼, 왜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못 알아 듣겠다'고 할까요? 바로 영어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용 전달 방식의 문제입니다. '우리말로도 이해를 잘 못하겠는데 영어로 어떻게 이해하냐'는 불만이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학생들에게는 강의내용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따라서, 교수가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요.

해결방법으로 교수가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합니다. 눈높이를 학생에게 맞추어 추상적인 설명 대신 사례나 예제 중심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은 미리 예습을 해야 합니다. 영어강의를 아무런 준비없이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지요. 학생들에게 예습을 강제하기 위해서 매 수업시간 초에 쪽지시험을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자연스럽게 출석체크도 함께 됩니다.

결국 영어 강의는 교수, 학생, 대학이 함께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전인적인 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교육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추가] Speaking From a Podium: Simple Tips to Get Started
강의 준비에 대한 참고가 될만한 글입니다.

한국내 대학의 영어 강의가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

한국의 대학에서 영어 강의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나, 실제 운영은 많이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오죽했으면 대학교 영어 강의는 '개그쇼'?라는 글이 온라인에서 주목을 받겠는가? 이 글에서 지적하는 영어 강의의 실태는 한국에 있는 다른 교수님들로부터 대충 들은 얘기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무늬만 영어강의이고 거의 우리말로 강의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학교 측에서 영어로 강의하는지를 감시한다는 소문도 있다. 교수도 학생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안된다. 학생들은 "한글로도 이해가 안되는데 영어로 수업이라니?"라고 불평한다. 심지어 영어로 국문과 강의까지 한다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트위터 ID @sensitive_ego님이 "저희학교는 국문과수업도 영어로 합니다"라고 확인해주셨습니다).

근본원인은 대학의 교육 목적에 바탕을 두지 않은 맹목적인 영어강의 도입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대외적인 목표에 맞춰서 반강제적으로 일정 비율의 영어강의를 도입하고 있다. 교육부나 각종 대학평가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시용에서 시작된 영어강의가 별다른 준비없이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우리말 강의도 근본은 같지만, 영어강의일수록 교육 목적에 기반을 두고 사전에 충분히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영어강의는 단순히 우리말 강의를 통역하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강의내용은 동일하더라도 영어의 특성에 맞게 강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교수들이 강의 내용 준비와 강의 연습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우선 영어강의를 위한 기본적인 언어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다행히 많은 교수님들이 해외에서 학위를 받거나 체류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영어강의를 위한 기본은 되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영어강의 경험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부족한 경험을 메꾸는 방법은 부단한 노력과 준비 뿐이다.

준비를 할 때는 강의내용을 머리로 뿐만 아니라 입으로 몸으로 익숙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사례를 자주 들고, 긴 글보다는 그림이나 그래프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강의노트를 사전에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중간중간에 학생들이 편하게 영어로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질문이나 토론에 칭찬과 긍정적인 피드백은 필수적이다. 구체적인 영어강의 준비방법은 다음에 쓸 글에서 제시하겠다.

둘째,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영어강의에 대한 세밀하면서도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교수가 아무리 준비를 하려고 해도 학교에서 지원이 없으면 힘들다.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에게 강의시간 수를 줄여 주는 것은 기본이고, 가능하면 같은 과목의 영어강의를 같은 학기에 여러 강좌 또는 매년 반복해서 강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재직중인 학교에서 3년째 강의중이지만, 실제 강의한 과목은 회계원리 1, 2 두 과목 뿐이다. 매 학기 같은 과목을 2-3강좌씩 번갈아 가르치기 때문에 영어강의지만 부담은 적은 편이다.

처음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들을 위해서 원어민 교수를 초빙해서 교수법 강좌를 여는 것도 좋다. 필자가 있는 경영대학에서 주관한 적이 있는 사례교육 세미나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영어강의를 한 경험이 많은 교수님이 있다면 그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학교측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의 학과에선 전공 기초과목의 경우 Course coordinator라고 해서 해당 과목을 수년간 가르친 교수가 다른 교수들에게 강의자료와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제도가 있다. 덕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강의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유수의 미국과 유럽대학에서는 처음 강의를 맡는 박사과정 학생이나 신임 교수들이 경험많은 교수로부터 강의노트를 받는 것이 흔하고 심지어 강의 평가가 좋은 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도록 권하고 있다.

아울러 충분한 검토를 통해 어느 과목에 몇 강좌 정도를 영어로 할 지를 정한 뒤 일관되게 매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들도 그에 맞추어 계획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교육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과목에서 영어강의가 더 효과적인 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영어권 국가에서 학문적인 선도를 하고 있는 분야 (경영학이나 공학)는 쉽게 영어강의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국문과나 국사학과 같은 경우에는 특수한 과목 (예, 언어간의 비교와 국가간의 비교)을 제외하면 당연히 우리말로 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가 재직중인 대학에서는 영어강의가 기본이지만 교수회의를 통해 예외적으로 중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사전에 정하고 이를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영대학 내에서는 중국경제론이나 중국의 회계 등과 같은 과목은 중국어로 강의한다.

영어강의는 강좌별 최대 인원을 30명 내외로 제한하여 학생들이 좀더 편안하게 교수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영어강의에서 발표와 토론을 적극 도입하려면 30명이 현실적인 상한선이다. 적은 규모의 강의는 교수에게도 보다 강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학생들에게도 영어강의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학생들의 불만을 수렴해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학점 차원의 혜택을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우리말 강의는 A, B, C, D 학점 비율을 엄격히 제한하는 반면 영어 강의에서는 그 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영어강좌 수강생들이 전체적으로 학점이 잘나오게 배려한다. 아울러 영어 강의를 수강하기 이전에 학생들이 필요한 영어과목을 이수하고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능력을 갖추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 이때 영어과목도 실제 강의시간과 생활에 쓸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연습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학생들도 어린 아이에게 밥먹여주듯 떠먹여주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대학교육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의 전에 미리 교재와 강의노트를 읽어보고 들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습이 복습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대다수의 유학생들이 영어강의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내용이다. 영어는 아는 만큼 들린다.

영어강의에는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보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충분히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교수의 준비와 학생들의 참여가 모두 필요하다. 교수는 발표나 토론의 주제와 관련 자료를 미리 준비해야 하고, 결과를 성적에 반영하는 방법을 결정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학생은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배운다는 기분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 구성원들은 영어강의를 도입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충분한 준비와 면밀한 실행이 없이는 영어강의는 문자 그대로 코미디가 될 수 밖엔 없다. 다음 글에서는 교수가 어떻게 영어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지를 논의해 보겠다.

영어강의가 한국 대학에 필요한 이유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대학내 영어강의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홍콩에서 영어로 강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안 짚고 넘어갈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을 세 가지 글로 정리해 본다. 이 글은 그 첫번째로 영어 강의가 한국 대학에도 필요한 이유이다.

대학들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영어강의의 이유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 배양과 대학의 국제화이다. 사실 둘 다 우리 대학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먼저 영어 능력 문제를 살펴보자. 인문사회계열은 그나마 낫지만 이공계열의 학과생들이 대학에 가면 제일 먼저 당하는 문제가 바로 영어와 수학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영수 위주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왜 또 영수가 문제냐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의 동생은 전기전자제어과 출신이다. 필자가 다닌 경영학과는 학부 전공 과목은 거의 한글 교재를 사용했다. 그런데 동생은 1, 2학년 때부터 영어 교재가 나오는데 이건 내게는 상상초월이었다. 공대생들의 공포라는 공업수학(2학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교재들이 영어로 된, 그것도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었다. 그래서 동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록 오래된 판이지만 번역된 교재를 별도로 보고 있었다. 영어로 된 수학 교재를 동시에 따라가느라 밤샘을 말그대로 밥먹듯이 해도 힘겨운 나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죽했으면 동생이 차라리 중고등학교때 영어책으로 수학을 배웠으면 좀 나았겠다는 말을 했을 정도겠는가?

필자도 학부 고학년부터 하나 둘씩 원서를 보기 시작했고, 석사과정에서는 거의 모든 전공과목에서 원서로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 강의였지만 실제로는 강의 내용 중에 영어 단어가 무수히 난무했고, 우리말은 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예를 들거나 농담을 할 때는 우리 말이 양념 역할을 했지만, 가끔은 차라리 영어로 강의 듣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한 가지 원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 나라 교재들이 상당수가 거의 원서의 번역본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적지 않은 교재에서 글쓰기 (사실은 번역) 수준이 낮아서 나중엔 원서를 보는 게 이해가 더 잘 될 지경이었다.

그럼, 어떤 이는 읽기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말 강의에서 영어 원서를 쓰면 읽기만 가능하다. 하지만, 영어 강의에서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모두 가능하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오랜 문제가 바로 읽기에 비해 다른 영어 활동이 거의 바닥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막상 직장에서 영어로 업무를 보려면 어학연수나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영어는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우면 되지 않느냐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하나 물어보자. 하루에 몇 시간이나 영어를 실제로 쓰십니까? 우리 영어 교육의 문제는 영어 시간 따로, 실제 사용 따로라는 점이다. 영어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에게 영어 쓰는 기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내 교육만으로 영어를 잘하게 된 극소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어에 몰입해서 거의 24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영어만 집중해서 연습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어는 학습 대상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생활 언어로서의 영어이다. 생활속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영어를 쓰기 힘들다. 하다 못해 기본적인 전공 용어도 막상 영어로 써보지 않으면 대화가 안된다.

다음으로 대학의 국제화를 살펴 보자. 우리 나라의 대학의 국제화 수준은 정말 한심한 수준이다. 최근 외국인 교수의 비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지만, 재외교포를 제외한 순수 외국인 교수는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현재 재직중인 대학에서 작년에 박사과정을 졸업하는 학생이 한국의 모대학에서 취업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당연히 그 학생은 필자에게 조언을 구했고, 필자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 했으나 역시나 부정적인 면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급여 수준은 홍콩내 대학에 비해 그다지 좋지 못했고, 대학 행정적인 면에서 외국인 교수를 위한 편의 (예, 영어로 된 공문서와 규정)를 제공받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가족이 있는 그 학생에게 한국어를 못할 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 줄 수 밖엔 없었다.

외국 학생의 비율은 어떤가? 학교마다 저마다 외국 학생 유치에 안간힘이지만, 실제 외국학생들은 어학연수 수준의 한국어 강좌 들으러 온 학생이거나 개도국에서 한국을 배우러 오는 유학생들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높은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오는 외국 학생은 극소수이다. 우리 대학의 수준이 외국 대학에 비해 뒤처진 면도 없지 않으나, 우수한 연구 실적을 올리는 일부 대학의 학과에도 유학생을 찾아 보기는 어렵다. 영어 강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시간 내에 우리말 강의를 따라 오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간 체류하는 교환학생과 한국어를 접하기 힘든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이 들을 만한 강의는 일부의 영어강의를 제외하면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영어 능력 배양과 대학의 국제화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대학 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대학 교육의 근본 목적은 전인적인 인재 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인(Whole Person)이라는 것은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 본다. 그렇다면 영어강의가 대학 교육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왜 필요한가?

첫째, 영어강의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필요하다. 변화에 적응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은 소위 말하는 상아탑과 같은 낡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켜 주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미래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굳이 학술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새로운 지식은 영어로 생산된다. 인터넷에도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영어 이용자들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학문적으로 갈라파고스 현상을 겪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도 본인은 영어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체재 중인 외국인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의 비율도 늘고 있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은 영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소통하지 않는 자는 고립되고, 고립된 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도태된다.

둘째, 영어강의는 학생들에게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가끔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이 영어가 무슨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듣는다. 그러면 나는 간단히 대답한다. "영어를 하면 노는 물이 다르다고." 히딩크는 네델란드 사람이지만 영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감독 생활을 해 왔다. 필자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홍콩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필자의 동생은 가끔 만약 영어만 된다면 해외 유수의 IT 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있을 텐데 하는 푸념을 한다.

지금은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다. 따라서, 인적자원 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엔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 실업률이 최고 수준이다. 필자는 그 대안을 인적자원의 수출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라면, 국내에서의 일자리 부족은 남의 나라 일이다.

셋째, 영어강의는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육에도 좀더 다양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이다.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나갈 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영어강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외국인 교수와 학생을 끌어들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국내에서 좋은 영어강의를 제공하는 것이 비용측면에서 더 저렴하다. 더구나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외로 교환학생으로 나가서 혜택을 보고 있다면 우리나라 대학들도 외국에서 오는 교환학생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상의 설명처럼 영어강의는 한국 대학 교육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영어강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취지는 좋으나 잘못된 실행으로 부작용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현재의 영어강의가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2010년 3월 6일 토요일

경영학 교수의 인적자원 시장

몇 주 전에 교수 급여 수준이 대학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한 적이 있다. 교수노동시장이 점차 세계화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교수 채용에 대한 투자가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다. 인문학과 같이 국제화가 더딘 분야도 있지만, 자연과학 및 공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분야는 점차 교수들의 국가간 이동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내 전공인 경영학, 특히 회계학의 예를 통해 교수 인적자원 시장의 현황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나라가 우리나라, 미국, 홍콩이므로 세 나라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교수노동시장을 설명해 보겠다.

1. 급여 수준
급여 수준은 미국, 홍콩, 우리나라의 순서로 서열화된다. 다른 전공과는 달리 적어도 경영학에 있어서는 미국이 거의 모든 면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회계학 박사학위를 마친 신임 조교수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미국은 대학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상위권 대학 (톱 20위권)의 경우에 연봉 17-20만달러수준이고, 홍콩의 중요대학은 10-12만달러, 한국의 상위권 대학은 5-6만달러 정도이다 (모두 US달러). 이렇게 급여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능력있는 분들이 아시아권 학교로 돌아오기 보다는 미국에 머물러 있으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박사학위 받으러 유학갔던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 현상은 자연과학이나 공대쪽에서도 이미 발생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가 조건에 맞는 신임교수를 뽑지 못하고, 연구 성과가 좋은 교수를 미국 대학에 뺏기고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미국의 연구중심대학들은 기본적으로 1년에 9개월 근무를 기준으로 계약을 한다. 따라서, 여름방학 3개월 동안에는 교수가 어디가서 뭘해도 상관없다. 계절수업을 하면 추가로 돈을 받는다. 홍콩이나 한국대학은 연간 12개월 근무가 기준이다. 홍콩대학들이 갈수록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기 어려워지고, 한국대학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근본원인은 결국 급여 차이에 있다. 급여차이는 단순한 월급의 차이 뿐만 아니라 각종 연구비 지원과 부대 혜택에서도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

2. 전공간 임금격차
미국의 경우에는 전공간 교수 급여차이가 상당히 크고 심지어 경영학 내의 세부전공간에도 급여 격차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2001년에 같은 학교내에서 회계학 신임 조교수 연봉이 15만달러였던 반면 경제학에서 연봉이 가장 높던 정교수 연봉이 채 10만달러에 못 미쳤다. 그래서, 경제학 교수하다가 다시 회계학 박사학위 따서 전공을 바꾼 분도 실제로 있다. 경영학 내에서는 회계학과 재무쪽이 월급이 가장 높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경우에는 조교수 초봉이 회계학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이런 급여 차이는 학문의 중요성과는 무관하게 노동시장의 수요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회계학 박사학위 배출자가 경영학의 다른 세부전공 또는 경제학의 세부전공별 박사학위 배출자보다 적다. 그에 반해 회계사 시험등을 위해 회계학 강의 수요는 경영학의 다른 세부전공보다 많다. 즉, 회계학의 경우 교수 공급은 적고 교수 수요는 많으니 연봉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실적이 좋은 교수들은 연봉을 30-50%씩 올려서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나 홍콩의 대학에는 전공간의 임금 격차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전공별로 교수 채용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홍콩의 경우 타 전공의 경우에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비슷하거나 더 높은 연봉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상당히 우수한 인력을 스카우트해 올 수 있다. 그에 반해 회계나 재무의 경우에는 미국보다 연봉수준이 낮기 때문에 좋은 사람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우리나라도 회계학쪽은 능력있는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

3. 결론
좋은 교수를 구하려면 결국 투자를 늘리는 수 밖엔 없다.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려면 국제 시세에 맞추어 그에 합당한 연봉을 제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제시하는 연봉과 연구조건이 다른 나라의 대학에 비해 차이가 날수록 그만큼 좋은 교수는 물건너 간다. 이제 애국심이나 모교에 대한 애정에 호소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미국에서는 학과단위로 1, 2명의 최고수준의 연구자를 스카우트해서 몇 년만에 연구실적이 급상승한 사례가 적지 않다. 나아가 대학 차원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단시간에 연구성과를 올린 학교가 존재한다. 홍콩 과기대가 그 예이다. 홍콩과기대는 1991년에 설립된 상대적으로 신생 대학이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로 미국 등지에서 유망한 교수들을 초빙해서 단숨에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했다. 회계학의 경우 1990년대에 3대 학술지 기준으로 세계 5위권의 연구성과를 낸 적도 있었다.

문제는 대학내 전공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특정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나 홍콩의 대학에서는 왜 회계학이나 재무 교수들이 연봉을 더 줘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전공에 동일하게 자원을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전공별로 강의에 대한 수요나 교수의 공급이 다른 현실에서 모든 전공에 똑같이 (또는 사람 숫자대로) 자원을 분배한다면, 결국 특정 전공에는 필요이상의 자원이 제공되고 다른 전공에는 자원의 부족이 발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전공별로 동일하게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역으로 대학차원에서 전공별로 투자우선순위를 매기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즉, 동일한 자원배분이 투자가 절실한 분야를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뿌린만큼 거둔다는 말처럼 인적자원에 투자를 해야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도 향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