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6일 토요일

월급 삭감과 대학의 경쟁력

어저께 대학 행정부총장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제목은 "A Message from the Vice-President (Administration) and Secretary," 본문에 아무런 내용도 없고 첨부파일만 두 개 덜렁 있었다. 하나는 html 파일이고, 나머지 하나는 pdf파일. 혹시 바이러스가 아닌가 해서 백신으로 확인한 다음 열어본 내용은 대학내 대부분의 교직원의 월급을 일괄적으로 3월달부터 5.38% 삭감한다는 내용이었다. 월급이 일정 금액 이하 거나 작년 가을 이후에 임용된 사람들은 이번 삭감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몇 달전부터 그런 조짐이 이미 있었다. 작년에 재정적자 확대로 인해 홍콩 정부 공무원들의 월급을 5.38% 삭감한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더니 작년말에 홍콩 내 몇몇 학교에서 같은 비율로 교직원 월급을 줄인다는 논의가 있더니 하나 둘씩 급여 삭감을 확정지어 갔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지난 달에 비슷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이번에 확정된 것이다.

이번 급여 삭감의 근본 원인은 역시 신용위기에 따른 경기불황이 있다. 불황으로 인해 세수는 줄고 경기진작을 위해 세출이 늘어나서 홍콩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게다가 홍콩내 신문에서 다룰 정도로 대학의 재정적자 역시 심각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홍콩 대학들은 공립대학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적자로 인해 지원액을 삭감하면서 자연히 경비절감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우기 여러 대학들이 자체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신용위기로 인해 막대한 금액의 투자손실을 보았다. 즉 정부의 지원은 줄고 자체 수익마저 말라버린 것이다.

우리 학교 내에서 급여 삭감에 대한 논의는 채 1달 정도밖엔 안되었지만, 다른 학교에선 벌써 3-4개월 전부터 비슷한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경비 절감의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월급 깎이는 것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우선, 각 대학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만 공식적으로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급여 시스템도 대외적으로는 정부 공무원 급여와 독립적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 상당히 비슷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대학에 대한 지원 금액을 조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교직원 급여를 통제할 수 있는데 있다. 또한 대학 자체적으로 조달한 기부금은 교직원 급여에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독립적인 운영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말로만 독립채산제라고 하면 무슨 소용인가?

둘째, 의사결정과정이나 업무처리 과정은 상당히 불만스럽다. 의사결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대다수의 교직원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월급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고용시에 계약서에 급여액을 명시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조만간 삭감 동의를 받는다고 한다. 고용계약서와 상충되는 법적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대외적으로 모양새를 좋게 만드려는 것 같은데 솔직히 월급삭감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이번 급여 삭감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홍콩 정부는 신용위기 직전인 2008-2009년에 걸쳐 재정흑자를 국민에게 돌려준답시며 적지 않은 소득세를 환급 또는 감면해 주었다. 심지어 돈이 남아 도는지 전기요금까지 인하해 주었다. 그때는 다들 좋아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바로 한 두 해 뒤를 예측하지 못한 근시안적인 행정이었다. 경기변동의 완화시키기는 커녕 경기변동을 부추긴 결과가 되었다. 또한, 학교 운영기금을 비효율적으로 관리해서 막대한 손실을 입힌 학교 행정 담당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급여 삭감에 앞장섰다.

셋째, 어찌 보면 가장 큰 문제는 홍콩 대학 교수들의 평균 월급이 거의 1997년 아시아권을 강타한 경제위기 당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IMF의 지원을 받았던 시기에 홍콩도 경기 침체를 겪었다. 더우기 2003년 홍콩에 사스(SARS)가 번지면서 경기가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 앉았다. 경기침체는 재정지원 축소로 이어졌고, 급여체계 전반을 바꾸게 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까지 홍콩 대학에 임용된 교수님들에 비해 2000년대에 임용된 교수님들은 기본 급여체계는 물론 연금 혜택 및 각종 수당 면에서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을 적용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예전 임금체계의 적용을 받는 분들은 연금 수령이 실제 납부액에 기준하는 것이 아니라 근속년수와 최종월급에 기초한 목표액에 따라 지급을 받았기 때문에 연금 수령액이 이자를 감안해도 실제 불입액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자녀 2명까지 국제학교에 보내도 될 정도의 교육수당과 소소한 각종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실제 납부액에 따른 연금을 받기 때문에 과거 연금체계에 비해서는 거의 20-30% 수준이고, 자녀교육수당은 없으며 주택수당도 예전의 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는 최상위권이었으며 미국의 대학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았던 홍콩 대학의 급여가 이제는 아시아권에서도 싱가포르 대학들에 밀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말에 다소 회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소득면에서 최근에야 겨우 1997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따라서, 이번 급여 삭감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체된 급여 수준은 기존 교수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기 힘들게 하며, 심하게는 뛰어난 교수들을 다른 나라에 뺏기는 빌미가 된다. 이미 교수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상당히 국제화된 인적자원 시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시장에서 정체된 급여는 홍콩 대학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상대적으로 많은 급여를 받는 전공인 회계와 재무 교수들에게서 문제가 두드러진다. 한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최근 5-6년간 홍콩내 대학 중에 회계쪽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대학의 교수를 부교수나 정교수급으로 채용해 온 경우는 전무하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북미 대학에서 졸업해서 오는 조교수는 간혹 있어도 부교수급 이상의 경력있는 교수님들은 전부 2000년 이전에 홍콩에 오신 분들로 예전 급여체계를 적용받고 계시다. 오히려 연구실적이 좋은 교수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경우는 종종 본다.

홍콩대학의 급여수준이 아직 우리나라 대학보다는 상당히 높지만, 장기적으로 정체된 급여는 국제적인 대학간의 인적자원 경쟁에서 뒤처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나도 논문이 잘되면 다른 나라로 떠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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