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일 월요일

홍콩의 소득세 2

처음 오시는 분은 작년에 올린 홍콩의 소득세를 참조하세요.

어느덧 2010년도 첫 달이 지나갔다. 지난 달에는 세금 내느라 정말 힘들었다. 홍콩은 소득세 부담이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낮기 때문에 별 걱정 안하다가 이번에 크게 혼이 났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홍콩 소득세제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것 중에 하나가 원천징수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납세자가 알아서 세금낼 돈을 모아둬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세금내려고 저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각종 금융기관, 특히 카드회사에서 세금 납부를 위한 대출상품이 많다.

원천징수가 없는 건 홍콩 와서 금새 알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2년차에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홍콩은 과세년도가 매년 3월말까지이기 때문에 대략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홍콩에 처음 온 2007년 9월부터 그 다음해 2008년 3월까지의 소득에 대해 2008년 5월까지 소득 신고를 하고 9-10월 쯤에 확정된 소득세 고지서를 우편으로 받는다. 고지서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2009년 1월에 80% 정도를 내고 4월에 나머지를 내도록 산정되어 있다.

두번째 과세년도인 2008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에 대해서도 2009년 5월에 소득 신고를 했다. 신고가 굉장히 간단하기 때문에 납부할 세액까지 계산했고, 그 때부터 2010년 1월에 낼 세금을 조금씩 모아두기 시작했다. 실제 세액은 1년 소득의 대략 8% 정도으니 한 달 월급에서 대략 10% 정도를 세금으로 따로 모았다.

문제는 10월쯤에 소득세 고지서를 받았을 때 터졌다. 납부할 세액이 예상했던 금액의 거의 두배가 되지 않는가! 그 때서야 예전에 홍콩의 다른 학교에 계신 한국 교수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두번째 과세년도분 소득세를 낼 때에는 실제 확정된 세금 (2008년 4월 - 2009년 3월)뿐만 아니라 다음 년도 소득세 추계액 (2009년 4월 - 2010년 3월)이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실제 소득세를 내는 시기 (2010년 1월과 4월에 분할납부)에 다음 년도 과세년도가 끝나기 때문이란다.

소득세 확정신고하면서 계산한 세금만 준비했던 나로서는 갑자기 거의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물론 다음 년도 추계액이란게 나중에 확정신고하면 납부할 세액에서 감액하기 때문에 실제로 2중과세는 아니다. 그리고, 매년 같은 일이 되풀이 되기 때문에 3년차부터는 거의 1년치 세금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에는 거의 2년치 세금을 몰아서 내야하는 유동성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0월부터 저축이란 거의 한푼도 못하고 세금을 모아야 했다.

홍콩 법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회계학 하는 사람으로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를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세운 가설이 다음과 같다. 홍콩은 외국 사람들이 많이 일하기 때문에 귀국하는 마지막 해에 세금 안 내고 출국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홍콩 정부에서 이로 인한 손해가 과거 5년간 1억 4천만 홍콩달러 (우리돈 21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소득세 추계액을 납부하면 마지막 해에 해외로 튀어도 그 손실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왜 원천징수를 하지 않을까? 원천징수를 하면 납세자가 해외로 출국하더라도 고용한 회사쪽에서 세금을 월급에서 미리 떼 놓으므로 그런 문제가 없다. 더구나 납세자가 2년차에 세금 폭탄을 맞는 위험도 없다. 내가 세운 가설은 바로 고용주의 비용부담을 줄이자는 거다. 홍콩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헤리티지 재단이 공동으로 발표한 '2010년 전세계 글로벌 경제자유지수'에서 1위를 할 정도로 기업의 각종 부담이 적은 곳이다. 원천징수는 대기업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중소기업 특히 영세한 소기업에는 적지 않은 관리부담이다. 더구나 홍콩은 1인 기업이나 Paper company도 적지 않기 때문에 원천징수의무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영세기업에게는 원천징수 예외규정이 있지만 홍콩 정부 입장에선 그 자체가 기업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하다.

결국 내 생각엔 고용주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근로자의 납세 편의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동료 교수들 중에는 세금을 자신이 알아서 준비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천징수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이번 세금을 내면서 역시 원천징수 쪽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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