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7일 금요일

홍콩에서 가르치면서 느낀 점들 (교수)

한국과 홍콩의 교수 사회를 직접 비교하기는 다소 조심스럽다. 한국에서는 박사과정 학생 신분으로 1학기 시간강사를 했지만, 홍콩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경력면에서 아직도 햇병아리 수준이다 보니 일천한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이라고 믿기 때문에 몇 글자 적어 본다.

교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존경을 받는다. 이 점은 내가 직접 교육시스템을 경험한 세 나라 (한국, 미국, 홍콩)이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르다. 한국이 미국이나 홍콩보다 교수들이 더 대접을 받는다. 물론 최근에는 몰지각한 일부 교수들 때문에 한국내에서도 교수들이 많은 욕을 먹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전반적인 평판은 한국이 나은 편이다.

홍콩도 군사부일체식의 동양적인 사고가 일부 남아 있어서인지 교수는 어느 정도 인정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정치 참여와 같은 사회참여는 그다지 많이 않은 것 같다. 홍콩이 워낙 실리를 추구하는 사회인 탓도 있겠지만, 정치적 자유가 완벽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홍콩에서 교수는 기본적으로 준공무원 신분이다. 모든 정규 대학들이 홍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서 실질적으로 국공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물죄나 각종 부정부패의 경우 공무원에 준해서 처벌받는다. 물론 각종 입학시험등의 제도가 투명해서 뇌물 줄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우리 과의 다른 교수는 이런 예도 말해 주었다. 작년에 홍콩정부 고위 관료가 가라오케에서 여자 종업원과 손잡고 있는 사진이 3류 잡지에 실렸는데 그것 때문에 사임을 해야 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라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외형상"의 도덕성을 공무원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보고도 괜시리 엉뚱한 장소에 갔다가 오해사지 말라고 했다.

한국과 홍콩 교수사회에서 실제로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각자 따로 논다는 점이다. 한국은 점심때는 교수들끼리 여럿이서 우루루 몰려다니는 게 일상적이다. 하지만, 홍콩은 두 세명씩 같이 먹거나 바쁘면 각자 먹는다. 우리 과 학과장 조차도 혼자서 학생식당가서 한국돈 2500원정도의 점심 먹는 걸 종종 본다. 이 점은 홍콩과 미국의 교수사회가 비슷한 것 같다. 더구나 서로 무슨 연구를 하는 지 공저자가 아니면 서로 얘기를 잘 안한다. 연구 아이디어를 교수간에도 도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교수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경우도 있다니 황당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우리 학교는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라서인지 분위기가 나은 편이라고 한다. 일부 학교의 경우에는 교수들끼리 복도에서 만나도 친한 사이가 아니면 인사도 잘 안한다. 특히 일부 고참교수들이 신참교수들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학생대하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홍콩 교수들은 열심히 일한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사실 홍콩 사회 전체가 일중독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교수들은 논문을 써서 좋은 저널에 게재되지 않으면 승진이 안되고 나아가 재계약이 안되니까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 직장인들은 워낙 사내외에 경쟁이 심하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 치열하게 일한다. 한국 노동자들이 실질 근로시간이 길다지만 홍콩보다는 짧지 않을까 싶다. 여긴 서비스업이 주된 산업이라서 대부분의 기업이 시간외 수당도 잘 안주니까.

쓰고 보니 역시 피상적인 비교에 그친 걸 인정해야 겠다. 아마 앞으로 수년 뒤에는 좀더 통찰력 있는 비교가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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