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7일 금요일

강의 평가

한국에서 한 학기, 홍콩에서 한 학기 강의하고 받은 강의평가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강의 경험은 일천하지만, 아무래도 요즘 한국에서 강의평가로 말들이 많아서이다.

개인적으로 강의평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의평가가 학생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교수의 입장에서도 강의평가는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그리고, 강의를 잘하는 교수님에 대해 포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문제는 어떻게 평가를 하고, 평가결과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이 사용 중인 평가방식은 강의의 품질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지 다소 의문스럽다. 예를 들어 어렵고 깊이있는 내용보다는 쉽게 쉽게 가려는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에 강의의 깊이가 얕아지고 학생들에게 떠 먹여주는 식의 강의가 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인기있는 교수중에는 (특히 학부과정에서) 학문적인 깊이보다는 엔터테이너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일부 교수들은 현행 강의평가를 인기투표에 비유한다.

또한 평가결과를 활용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홍콩학교에선 연구가 성과평가에서 훨씬 중요하게 작용하고 강의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여긴다. 현행 강의평가의 문제점을 인식한 것도 있겠지만, 연구성과에 따라 학교별 예산 지원액이 달라지는 홍콩정부의 정책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홍콩에선 강의평가결과는 해당 교수와 학과장 및 학장 정도만 확인할 수 있고, 다른 교수나 학생은 확인할 수 없다. 얼마전에 외부에서 감사가 나왔는데 원칙에 따라 강의평가는 학과평균점수만 제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비공개원칙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평가결과가 좋은 몇 명에게 포상을 하지만, 나머지 교수들의 평가결과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물론 승진심사들에 참고하지만 미국에서도 연구결과가 훨씬 중요하다.

한국의 일부 대학에서 대외적으로 강의평가결과를 공개했다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가뜩이나 부실한 연구환경에서 강의에 초점을 맞출 경우엔 연구는 뒷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승진심사에 강의평가결과가 들어가면 결국 조교수나 부교수들만 평가점수 높이기에 열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강의조교를 하면서 들은 강의평가 높이는 노하우가 몇 가지 있는데 강의평가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첫째, 학기 첫날부터 불평분자를 내쫓는다. 아무리 강의를 잘해도 매사에 불만이 있는 학생들은 좋은 평가를 내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은 가만히 있고 교수가 모든 걸 자기 머리에 넣어주길 바라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학습하려는 의욕이 없다. 시험점수가 안나와도 자신이 공부하지 않은 것보다 교수가 못 가르쳐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리 불만이 있는 학생들은 겁을 줘서 내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법은 많은 과제나 시험으로 학습의욕이 높은 학생들만 남긴다. 이러면 과제나 시험의 채점부담도 줄어든다. 둘째, 강의는 깊이 있는 내용까지 다루고 시험과 과제는 어렵게 하는 대신 점수는 후하게 준다. 그러면 자신의 노력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고 뭔가 많이 배웠다는 충족감을 느낀다. 실제로 시험점수와 학점과 강의평가간에는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아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강의평가도 좋게 하는 경향이 있겠지만, 학점이 낮은 학생들이 불만을 교수탓으로 돌리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셋째, 중간고사는 쉽게 하고 기말고사는 어렵게 한다. 강의평가를 기말고사 전에 실시하므로 중간고사 점수만으로 학생들은 강의평가를 후하게 준다. 대신 기말고사를 어렵게 해서 학생간의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판별하는 것이다. 시험점수와 강의평가간의 상관관계를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개인적으로 반대하지만 실제로 이 방법을 선호하는 교수도 미국에서 본 적이 있다.

내 경우엔 현재 위의 방법들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강의하는 과목은 1학년 기초 회계학 과목이라서 경영대학 학생에게 필수과목이다. 그래서, 해당과목 코디네이터인 교수가 준비한 동일한 강의노트로 모든 강좌에서 동일한 내용을 가르친다. 시험도 동일한 내용을 한날 한시에 보기 때문에 교수의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다. 아직은 강의경험도 부족하고 홍콩 교수들에 비해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불리한 나는 지난 학기에 학과 평균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우리 학과 평균이 학교 전체 평균을 훨씬 상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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