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6일 금요일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 관광

American Accounting Association Annual Meeting에 참석하러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돌아왔다. 가기 전에 날씨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바람이 장난이 아니고 온도도 상당히 낮았다. 최고 기온이 20도, 최저기온이 15도니까 홍콩의 초겨울 날씨다. 어떤 한국 교수님은 추운 기억만 남겠다고 할 정도 였으니까.

작년에 뉴욕에서 학회를 했을 때는 별로 걸어다닌 기억이 없는데 이번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선 정말 많이 걸어다닌 것 같다. 우선 학회가 열리는 호텔에서 2블록 떨어진 호텔에서 숙박한 것도 그렇고, 호텔 부근은 물론이고 City Tour중에도 정말 많이 걸어 다녔다. 내 저질 체력으로 거의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있는 스케줄을 소화한 것을 보면 많이 걷는 것이 피로하긴 해도 몸에는 좋은가 보다. 그리고, 홍콩보다 좋은 공기도 한 몫을 하는 듯. 바람이 강하지만 대신 신선한 공기를 계속 맛볼수 있었다.

학회 마지막 날 선배 교수님이 저녁 사준다고 해서 나갔던 Sausalito 해안. 사진은 전부 아이폰4로 찍었는데 핸드폰 카메라인지라 화질이나 선명도가 다소 낮다.



















The Inn Above Tide라는 Inn. 전망이 좋아서 숙박비가 얼마나 할까 궁금했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가장 작은 방이 1박에 세전으로 $305! 참고로 학회가 있었던 Hilton도 1박에 세전으로 채 $200이 안되었는데.



















Sausalito 해안가에 있는 작은 조형물 위에서 느긋하게 자리잡은 갈매기 한 마리.



















경치 좋은 해안가에 자리잡은 고급 주택들. 이런 데 집이 있으려면 연봉이 백만달러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데...



















저녁먹은 식당에서 찍은 사진. 이름은 기억이 안 남. 이태리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전망때문인지 가격이 상당했지만 맛은 괜챦았다. 얻어먹는 것이라서 더 맛있었을까?



















저녁 먹고 돌아가서 뮤지컬 Wicked를 본 Orpheum Theatre. 샌프란시스코 가기 전에 예약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했었는데, 선배 교수님들 여럿이 함께 간다고 하는 바람에 따라 갔다. 작년에 New York City에서 Phantom of Opera와 Lion King을 봤는데, Wicked도 비록 Broadway는 아니지만 정말 훌륭했다. 역시 미국에서 보는 뮤지컬은 확실히 비싼 티켓값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학회가 끝난 다음날 City Tour로 몇 군데를 돌아 보았다. 말이 City Tour이지 거의 시 외곽으로 돌았다.

제일 먼저 간 Muir Woods. Redwood란 아름드리 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장관을 이룸. 자연보호운동에 앞장선 Muir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을 딴 National Monument 중의 하나라는데 City Tour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다. 1시간 정도 산책을 했는데 산림욕 한번 제대로 하고 온 느낌이다. 좀 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돌아왔다. 역시 미국은 자연 하나는 일품이다. 다음 번에 서부쪽에서 학회하면 꼭 Yosemite에 꼭 가봐야 겠다.



















어른 여럿이 둘러싸도 모자라는 둘레와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이 치솟은 모습이 사진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나무 둥치에 들어가서 찍은 사진. 내 모습이 작아 보인다.

























Muir Woods에서 돌아오면서 찍은 사진. 홍콩도 외곽으로 나가면 숲이 많지만 미국의 나지막한 산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City Tour의 다음 목적지는 Sausalito. 전날 저녁에 식사를 하러 갔을 때는 날씨가 좋았는데 City Tour때는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별로였다. 그래서, 사진은 전날 찍은 걸로만 위에 올린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근처 허름한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간단한 치즈피자였는데 왜 홍콩에는 이런 피자를 맛보려면 이태리 식당까지 가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음은 Bay Cruise. Golden Gate Bridge와 Alcatraz를 배타고 돌아보는 건데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강해서 추웠다는 느낌이 강하다.

유명한 교도소였던 Alcatraz. 직접 가보는 건 귀찮아서 빼버렸는데 잘 한듯.


















멀리서 보는 Golden Gate Bridge.



















바로 밑에서 찍은 Golden Gate Bridge.



















Sausalito 갔다 오면서 Golden Gate Bridge를 차로 지나갔는데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공간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조깅이나 자전거로 건너가고 있었다. 걸으면 거의 40-50분 정도 걸린다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한 번 시도해 볼만할 듯.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한 식당에서 찍은 사진. City Tour를 마치고 공항갈 때까지 시간이 제법 남아서 Fisherman's Wharf까지 20분쯤 걸어가서 간단히 주변을 구경한 다음 식사를 했다. 호텔에서 추천한 곳인데 가격은 비슷한데 맛은 Sausalito의 식당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듯 했다. 그래도 전망 하나는 비싼 값을 하는 듯.



















샌프란시스코 살았던 분들 말로는 여름보다 가을이 더 따뜻하고 날씨도 좋다고 한다. 언제 기회가 되면 날씨가 좋을 때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찾고 싶다.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 iPhone 활용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 밸리가 있는 IT산업의 본산이라서 그런지 각종 IT제품을 사용하기 편리한 곳이다. 마침 샌프란시스코 가기 직전에 아이폰 4를 구입했기 때문에 간단한 활용기와 관련 제품에 대한 소감을 써 본다.

1. 아이폰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데이터 로밍을 끄는 것이었다. 현재 이용중인 홍콩 이동통신사의 경우 Day Pass (하루 무제한)로 데이터로밍을 할 경우 HK$168 (우리 돈 2만 5천원 정도)를 내야 하고 그냥 데이터 로밍을 쓰면 말 그대로 요금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데이터 로밍은 출발 전에 끄고 항공기를 탄 다음에는 아예 셀룰러 데이터까지 꺼버렸다. 물론 항공기 안에서는 에어플레인 모드로 변경.

데이터 로밍이 안되니까 Wi-fi 접속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호텔 예약할 때부터 무료 wi-fi가 있는지 확인했다. 원래 학회가 열리는 Hilton과 Park 55호텔은 너무 숙박비가 비싸서 같은 4성급 호텔로 2블럭 떨어진 Prescott 호텔을 Priceline.com을 통해 예약했다. 그 덕분에 절반 이하의 가격에 숙박할 수 있었고, Wi-fi까지 무료라서 적지 않은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Hilton과 Park 55는 wi-fi가 유료). Wi-fi 접속이 비교적 쉽고 속도도 잘 나와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Prescott호텔이 속한 Kimpton호텔 체인 멤버쉽에 무료로 가입하면 가입시에 등록한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바로 접속이 되었다. 한번 접속하면 Profile이 남아 있어서 다음 번 접속할 때 추가로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또 한 가지 걱정되었던 것은 배터리 충전인데 다행히 Cathay Pacific의 항공기에는 좌석마다 전원이 있어서 충전할 수 있었다. 혹시나 공항에서 충전할 시간이 있을까 해서 충전기를 들고 타는 가방에 넣었는데 요긴하게 썼다.

아이폰 4를 출발 이틀 전에 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안 가져 갔으면 많이 후회할 뻔 했다. 넷북도가져갔지만 MS-Office파일 편집 이외에는 쓸 일이 없어질 정도였다.

2. 아이폰 앱
여행 중에 주로 사용한 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아이폰에 기본으로 내장된 앱들이다.
Mail: 이메일 확인을 위한 필수 앱.
지도: 말 그대로 지도 앱. Wi-fi 접속이 필요하므로 호텔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주로 확인.
음성메모: 본인의 발표 때문에 듣고 싶었던 프리젠테이션에 보지 못하게 된 지인의 부탁으로 녹음하는 데 사용. 의외로 깨끗한 음질에 놀람.
카메라: 사진과 동영상 촬영용. 디지탈줌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어떻게 쓰는 지 몰라서 처음에 좀 고전함. 동영상 기능이 예상보다 괜찮았음.

다음은 개인적으로 설치한 앱들이다.

Textie (무료): 인터넷을 통한 문자메시지 앱. 전화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다른 많은 문자메시지 앱들과는 달리 이메일 주소로 등록가능하고, 무엇보다 Push가 빨리 가서 인터넷을 통하지만 거의 실시간 문자메시지가 가능하다. 홍콩과의 시차 때문에 일단 문자를 보내서 통화가능 여부를 확인한 다음 Skype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Skype (무료): 유명한 인터넷 전화 앱. 와이프에게 예전에 쓰던 아이팟 터치를 주고 직접 연결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다. 그래서 유료지만 와이프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다. 그래도 시내 통화료 (홍콩은 유, 무선전화 요금 동일)니까 로밍 전화와는 비교도 안되게 싸다.

Tripit (무/유료): 여행 일정관리 앱. 무료 버전은 광고가 나오는데 무료버전으로도 충분하다. 여행 일정을 웹사이트에 등록한 다음, 항공기, 호텔, City Tour 등의 예약 이메일을 forwarding하면 따로 입력할 필요없이 해당 정보를 등록해 준다. 학회 및 각종 식사 약속들도 웹사이트에 입력해 놓으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Off-line모드에서도 마지막으로 온라인에 접속해서 업데이트해 놓은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GoodReader (무/유료): MS 오피스 파일과 PDF파일 리더. 유료버전 사용중인데 돈이 안 아까움. 길거리에서 Wi-fi가 안되는 경우를 대비해서 PDF로 된 각종 지도를 다운받아서 저장해 두었다. PDF 지도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각종 도시별 관광안내 사이트나 교통편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

Instapaper (무/유료): 웹페이지를 저장했다가 볼 수 있는 앱. 유료버전 사용중인데 역시 돈 값을 하고 남음. 저장은 웹브라우저에서 클릭 한번이면 끝. 학회 일정과 각 세션별 논문 목록을 저장해 두었다 수시로 확인하였다. 두꺼운 프로그램을 찾는 것 보다 이게 훨씬 편하다. 더구나 긴 웹페이지는 다시 열면 마지막에 본 부분을 보여주므로, 수많은 세션중에서 관심있는 곳을 마지막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효과가 있어서 편리하다.

Awesome Note (무/유료): 메모 앱. 유료버전 사용중. 주로 와이프의 요청에 따라 쇼핑할 목록을 기록.

그밖에 평상시에 자주 사용하는 Osfoora (트위터용 앱), MobileRSS (RSS리더), Numerous (공학용 계산기, 팁과 환율 계산용) 등을 이용하였다.


2. 아이패드
홍콩에 아이패드가 출시되었지만 카메라 장착된 다음 모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여행에서 공항이나 스타벅스 같은데서 아이패드를 수시로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짧은 기간동안 많이 사람이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여행 중에는 다른 노트북이나 넷북보다 훨씬 편리한 제품인 것 같다.

또한, 숙박한 호텔이 애플스토어에서 멀지 않아서 직접 가 보았다. 미국 iTunes 계정용 Gift card를 구입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주변의 어느 상점보다 많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애플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보니 왜 애플이 시가총액 세계 1위의 IT기업이 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3. Wi-fi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호텔에서 Wi-fi를 무료로 쓸 수 있어서 통신비 중에 많은 부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호텔이 Union Square에 가까운 번화가 쪽이라서인지 주변을 돌아다닐 때도 Public Free Wi-Fi나 비밀번호가 안 들어간 Wi-Fi를 수시로 잡을 수 있었다. 특히 스타벅스는 얼마 전부터 비밀번호 없이 무료로 Wi-Fi를 쓸 수 있게 해 두었기 때문에 곳곳에 보이는 스타벅스 문 옆에서 몰래 Wi-Fi를 몇 번 썼다. 특히 예정에 없던 곳을 가야 할 경우 주소도 모르기 때문에 PDF지도에서 찾기가 힘들어 몇 번 길을 헤맸는데, 이럴 때 Wi-Fi로 연결한 지도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Free public wi-fi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점이었다. 출발전에 구글로 검색해 보니 9월부터 사용가능하다고 했는데 막상 Free public wi-fi가 떠서 접속해 보니 역시나 접속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T-mobile의 $7.99짜리 DayPass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온라인 등록시 우편번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홍콩은 면적이 작아서인지 우편번호가 없다. 신용카드 사용자 주소의 우편번호를 확인하는 것 같은데 빈칸으로 남기거나 아무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아예 처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로밍폰(데이터 로밍이 아니라)으로 집으로 전화해서 샌프란시스코 출발을 알려줄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여행갈 때마다 아이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 같다. 아이패드까지 산다면 넷북은 여행때 가져가지 않을 것 같다. 하긴 집에서 넷북은 딸아이 장난감이 된 지 오래됐고, 갈수록 효용이 줄어드는 듯하다.

2010년 7월 31일 토요일

iPhone 4 구입후 하루동안 사용하면서 느낀 점

어제 홍콩에서 iPhone 4가 출시되어 바로 아침에 가서 구입했다. 몇 달간 벼르고 별러 산 건데 현재까지는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구입하고 하루동안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 봅니다. 제품 개봉기 같은 건 이미 많이 나와서 통과하고 실제 소감 중심으로 씁니다. 제 블로그에 원래 사진을 잘 안올리기도 하구요.

1. 구입 이유
아이폰4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팟 터치 몇 달간 쓰면서 아이폰/아이팟 터치 인터페이스에 많이 익숙해졌고 기존의 유료/무료앱을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게 좋다. 기존에 쓰던 삼성 핸드폰은 홍콩에서 구입해서인지 영어 또는 한자로만 연락처 저장이나 문자메시지를 이용할 수 있어서 많이 불편했다. 안드로이드폰도 많이 나와 있지만, 아직 안정성면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아서 아이폰쪽을 선택했다.

2. 구입하면서 느낀 점
이번에 홍콩에서는 3개 이동통신사(3HK, 1010, Smartone-Vodafone)가 동시에 아이폰4를 출시했다. 모두 2년 약정 계약으로 판매하고 있다. 애플과 계약된 공인 reseller들은 아직 판매하지 않고 있다. 애플 온라인 스토어는 어제 오후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배송까지 3주 정도 예상된다니 초도물량은 전부 이동통신사에 배정된 것 같다. 아무래도 이동통신사들과의 관계 때문에 애플에서 내린 결정인 듯 하다.

저는 1010을 선택했는데 집 근처에 있는 다른 두 회사 대리점에서는 미리 예약주문를 안 했으면 판매할 재고가 없다고 해서 그나마 예약주문없이 살 수 있는 통신사를 선택한 것이다. 출시 첫 날인데도 재고가 없다니 홍콩도 아이폰 열기는 대단하구나 하고 느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제 0시에 각 회사별로 출시 기념 파티와 함께 아이폰 가입을 받았는데 줄선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관련 기사). 어제 저녁에 퇴근 길에 보니 3HK에서 지하철 역 출구 바로 앞 로비에서 신규 주문을 받는 창구를 개설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실물을 구경하고 가입문의를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이 홍콩에서는 이동통신사를 통해서 2년약정을 맺고 휴대폰을 사도 모두 unlock폰이라서 다른 회사 sim카드를 꽂아도 이용가능하다. 우리나라도 SKT와 KT가 서로 심카드 호환할 수 있게 한다니 기대해 볼 만하겠다.

3. 가격 및 계약 조건
1010의 경우 4가지 플랜(비교표)을 제시했는데 월 사용료가 낮을 수록 무료통화시간과 데이타 무료이용량이 줄어든다. 그리고, 가입시에 HK$4,488 (HK$1은 대략 150원 정도)을 일시불로 내도록 하는데 그중 일정 금액을 추후에 계약상의 월 사용료에서 감해주도록 되어 있다. 즉 초기 비용 HK$4,488에 선불로 내는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다. 회사쪽에선 rebate라고 하던데 실제로는 prepayment가 맞는 듯 하다. 그래서, 계약상의 월 사용료가 높으면 초기 비용에서 선불 사용료 비중이 높아서 나중에 실제 지불하는 월 사용료는 4가지 플랜간의 차이가 많이 줄어 들었다. 전형적인 조삼모사입니다.

4가지 플랜 중에서 월 400MB 무료 데이타 플랜을 선택했는데 월 1800분 통화와 1010 Wi-Fi 무료사용이 포함되어 있다. 월 사용료는 기본 플랜상의 HK$237 + 전파이용료 HK$12 + 국제로밍 음성사서함 및 지정번호 통화차단 서비스 HK$38 해서 월 HK$287 이다. 마지막에 언급한 서비스는 선택사항인데 1010직원이 최소 월 HK$36이상의 선택서비스에 가입해야 된다고 해서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걸로 선택했다. 의무사항이 아닌 것 같은데 두번 물어봐도 꼭 가입해야 한다고 해서 그 친구도 먹고 살아야지 싶어 크게 따지진 않았다.

정리하면 가입시에 HK$4,488 (단말기값 HK$1,688 + 선불 사용료 HK$2,800) 내고, 첫 3개월간은 매월 HK$87 (계약상 월 HK$287에서 선불액중 HK$200 차감), 다음 20개월간은 매월 HK$183 (계약상 월 HK$287에서 선불액중 HK$104 차감), 마지막 1개월은 HK$167 (계약상 월 HK$287에서 선불액중 HK$120 차감)을 내게 된다.

집과 연구실에서 유선전화가 무제한 통화가 가능하므로 무선전화 무료통화시간은 4개 플랜 모두 충분하다. 그래서, 무선 데이타 이용량과 가격을 고려해서 선택했다. 집과 연구실 모두 Wi-Fi를 쓸수 있기 때문에 가장 적은 월 200MB 플랜도 충분한 듯 했지만, 2년간 총비용면에서 400MB플랜이 조금 더 싸다고 추천해서 400MB플랜을 가입했다. 홍콩은 예금 금리가 1% 정도라서 단순히 2년간 총 비용만 비교해도 충분하다. 직접 계산기 두들겨 가면서 비교해 봤지만, 솔직히 지금도 왜 총 비용면에서 400MB플랜이 200MB 플랜보다 더 싸게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4. 개봉
사실 박스 개봉기를 쓰기가 어색한게 현장에서 박스 열어서 테스트하고 가져왔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직원이 박스를 열기 전에 미리 일단 박스를 열면 바로 외관상 불량이 있는 지 확인하라고 했다. 일단 가져가면 불량이 있어도 통신사 대리점이 아니라 AS센터로 가져가야 한다고 경고를 해 주었다. 애플의 AS정책 때문이라는데 워낙 소문이 나 있어서 일단 자세히 살펴 봤다. 특히 오줌 액정이 없나 주의깊게 봤는데 다행히 액정이나 외관상의 문제는 없어 보였다.

또 한 가지 직원이 미리 경고한 것이 있는데, 페이스타임(애플이 개발한 아이폰4의 화상전화 기능)을 처음 사용하거나, 설정에서 off했다 다시 사용하기 위해 on으로 바꾸면 매번 애플사로 국제문자메시지 하나 보내져 요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폰4 구입 계약서에 이 사항을 별도 문단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요금이 얼마냐 물어보니까 한 메시지에 HK$3 (약450원)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테스트를 위해서 전원을 켜니 페이스타임을 위해서 국제문자메시지를 보낼까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당장은 쓸 일이 없으니 물론 no라고 했지만, 솔직히 왜 그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지 이해가 안된다. 현재 페이스타임은 wi-fi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3G망을 통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된다. 특히 최초 설정 때는 모르겠지만, off했다가 on했을 때도 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 불합리하다. 미국에서야 국내 문자로 처리되겠지만, 해외 이용자는 어떡하라는 얘기인지? 직원도 일단 사용하기 시작하면 off로 되돌리지 마라고 충고했다. 장기적으로 페이스타임을 애플의 아이패드나 아이팟 터치에 도입한다는데 wi-fi전용 제품에선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5. 번호이동
기존에 사용중이던 번호가 4개월 정도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서 번호 이동이 어렵웠다. 그래서, 일단은 새 번호를 받고 Call forwarding 서비스를 이용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기존 계약이 끝나면 번호이동을 해서 직접 원래 번호를 쓰기로 했다. 다행히 기존 번호의 통신사 Call forwarding 서비스와 번호이동은 모두 무료로 처리된다고 해서 이로 인한 추가 부담은 없다. 물론 기존 계약으로 인한 사용료는 계속 내야된다는 부담이 있지만 원래 저렴한 플랜에 들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은 적었다. 다만, Call forwarding으로 받으면 발신자 번호가 내 예전 번호로 찍혀 나오는 문제를 발견했다.

6. 사용 소감
우선 개봉했을 때부터 느낀 건데 액정이 정말 깨끗하다. 아몰레드가 장착된 제품은 잘 모르겠지만, 아이폰 3GS나 아이팟 터치보다는 눈에 띄게 선명하다. 데스그립은 적어도 홍콩에선 별 문제 없는 듯 하다. 실제로 연구실과 집에서 문제가 된 부분을 케이스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잡아봤는데, 문제의 부분을 양손으로 꼭 잡는 최악의 자세에서 연구실에서는 신호표시가 5개에서 3개로 2단계 줄어들었고, 집에서는 3개에서 1개로 줄었다. 문제의 부분을 대충 잡으면 1단계 줄어드는 정도였다. 우리 집이 산 중턱에 있어서 신호가 상대적으로 약한데도 통화가 끊기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iOS4는 적어도 Wi-Fi에 관한한 확실히 iPod Touch나 iPhone 3GS보다는 iPhone4에 최적화 된 것 같다. iPod Touch는 iOS4로 업그레이드한 뒤에 연구실에서 Wi-Fi신호가 수시로 끊기는 경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업그레이드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현상인데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iPhone4는 그런 현상이 전혀 없었다. 애플 제품은 OS의 하위 기종 호환성이 좋다는 평은 점점 옛날 얘기가 되가는 듯 하다.

7. 보호필름과 케이스
데스그립 때문에 제공되는 무료 케이스는 아이폰 앱으로 신청하면 9월쯤에 보내준다고 해서 일단 보호필름을 붙이고 싼 케이스를 하나 샀다. 보호필름은 애플 공인 reseller에 가서 샀는데, 무반사 처리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에서 무반사 처리된게 좀더 비싸지만 눈에 좋다고 해서 선택했지만 솔직히 별로다. 보호필름 붙이기 전의 선명한 액정은 온데간데 없고 색번진 것 처럼 이상하게 보였다. 직원이 밝기를 높이라고 해서 최대로 높였더니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원래의 액정보다 못하다. 좀 써보고 영 불편하면 다시 무반사 처리 안될 거로 붙여야 겠다.

케이스는 애플 공인 reseller에서 너무 비싸서 휴대폰 악세사리 샵에서 1/3 가격의 싼 제품으로 일단 장착했다. 그리고, 아이폰 앱으로 케이스 신청까지 오늘 마쳤다. 처음엔 Bumper 케이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꽤 여러 제품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투명한게 좋아서 Incase Snap의 투명케이스로 주문했다. Belkin도 투명이라 좋아 보이는데 Belkin마크가 뒷면에 찍혀 있어서 탈락. 배송에는 3-5주가 소요된다고 한다.

8. 총평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하고 구입했지만, 현재까지는 아주 만족스럽다. 특정 부분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기 보다는 각 부분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서 전체적인 성능이 좋아진 느낌이다. 무엇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궁합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홍콩은 아이폰이 출시된지 꽤 오래되서 교체수요가 상당했겠지만, 나처럼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도 아이폰4를 산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한국에도 아이폰4 나오면 3GS모델때 못지 않게 반응이 상당할 거라 예상된다.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회계학 교재에 대한 단상

이번 학기 기말고사 채점과 성적처리를 마무리하면서 회계학 대학 교재에 대해 생각난 것이 있어서 간단히 정리한 글입니다.

회계학은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 급격히 변화하는데 대학 학부 수준 교재는 베스트셀러인 원서들조차 지난 20년동안 크게 바뀐 게 없다. 회계기준이 바뀐 것을 업데이트하고 사례를 최근 것으로 바꾼 게 전부이고, 이론적인 발전은 거의 없다. 학부 수준 교재가 최근 연구를 거의 따라가지 않다 보니, 내가 학부에서 강의하는 내용도 거의 15년전 학부 수업때 들었던 내용과 별반 다른 게 없다. 강의를 하면서 최근 이론 얘기를 조금씩 추가하지만, 학부 수업은 교재가 기본이다 보니 한계가 있다.

누가 혁신적인 교재를 좀 써주면 좋으련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회계학의 경우 교수의 연구실적평가에서 교재 저술은 학술지 논문에 비해 우선순위가 많이 쳐진다. 그때문에 tenure에 목매는 젊은 교수는 물론이고 tenure를 이미 받은 교수들도 연구실적이 좋은 분일수록 교재 저술은 뒷전이다. 내 경우에도 승진심사에서 교재는 거의 도움이 안되고, 무엇보다 교재를 저술할 내공이 안되서 엄두도 못내고 있다.

사실 이론과 실무에 모두 능통한 교수님들이 적은 것도 문제다. 실무경험이 있는 분은 이론적으로 약한 경우가 많고, 이론적으로 대가인 분들은 실무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교재들도 회계처리 중심의 기술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과 이론적인 내용만 다루는 것으로 거의 양분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학원 수준의 교재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막상 살펴보면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아우르는 교재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앨빈 토플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과연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10-20년 뒤에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리먼 브러더스와 회계 투명성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조사인이 작성한 파산 원인에 대한 보고서(원문 링크)를 공개되었다. 근본 원인은 예상대로 Sub-prime mortgage loan을 비롯한 파생상품의 위험관리 실패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재무적 부실을 숨기기 위해서 대차대조표 상의 회계조작을 했다는 점이다. Repo 105 거래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부채비율을 목표수치까지 낮추었는데 거래의 실질은 다음과 같다.

1단계, 보유중인 증권을 매각하여 현금을 조달한다. 이때 장부상으로는 매각으로 처리했지만, 담보나 재매입 조건 등을 보건데 실질적으로는 증권을 담보로한 차입거래로 봐야 한다.
2단계, 조달한 현금으로 부채를 상환한다. 거래의 결과 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감소하므로 부채비율이 감소하는 효과를 거둔다. 이런 거래를 결산분기말 며칠 전에 실시한다.
3단계, 다음 분기가 시작되면 곧 새로운 부채를 차입하여 매각했던(실제로는 담보였던) 증권을 다시 매입한다.

이렇게 부외부채로 이용한 금액이 한 분기에 최대 500억달러나 되고, 그 결과 부채비율이 거의 2페센트 포인트 가까이 감소하였다. 더우기 회계감사인이었던 Ernst & Young은 당시 적정의견을 표명했고, 지금도 리먼의 회계처리는 회계기준에 부합되는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국회계기준이 이 부분을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Repo 105 거래가 실질적으로 자산의 매각거래가 아니라 차입거래라는 사실을 감사인이 알았다면 최소한 주석에라도 공시하도록 요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금액의 중요성을 볼 때 주석사항 기재 미비로 한정의견도 줄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Enron은 Special Purpose Entity 로 부외부채를 숨기더니, Lehman Brothers는 Repo 105로 부외부채를 숨긴 것이 드러났다. 회계기준이나 감사기준와 같은 규정에는 허점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그와 같은 허점을 찾으려 하는 경제적인 동기를 어떻게 차단하느냐일 것이다.

관련 기사:
Financial Times: Repo 15에 대한 자세한 설명
New York Times: 파산조사인의 전반적인 보고 내용

추가:
Knowledge@Wharton: 당시 미국회계기준의 제도적 허점과 개선상황에 대한 글입니다. 리먼 브러더스가 당시 미국회계기준상의 부채인식 조건을 교묘히 피해 갔습니다. 현재 미국회계기준은 이런 약점을 해결한 상태라고 합니다.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영어 강의를 처음 준비하는 분을 위한 조언

이 글에서는 영어강의를 처음 준비하는 젊은 교수님들이나 박사과정생들에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사항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저도 아직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고, 좀더 나은 영어강의를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제가 쓰는 얘기는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며, 절대로 영어강의의 왕도는 아니라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필자의 영어에 대한 교육 배경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제 경우를 들어보시면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조금이나마 영어 강의에 자신감을 얻지 않을까 싶어서 입니다. 필자는 솔직히 20대 중반까지 제대로 된 영어로 말하기 듣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학력고사 세대라서 듣기 평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발음도 원어민 교사에 비하면 많이 미흡했지요. 그래서 공군장교로 군복무를 하면서 유학을 염두에 두고 독하게 영어 듣기 연습을 했습니다. 듣기는 혼자서 학습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서 미국에 가서도 크게 애로를 겪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말하기였는데 미국에서 2년간 있으면서도 정말 안 늘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의 특성상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서이기도 했고 소심한 성격탓에 미국학생들과 오랫동안 얘기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세미나 시간에서 논문은 다 읽었지만 원어민 학생들의 토론에 쉽게 낄 수 없었습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하신 적지 않은 교수님들이 필자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듯 합니다. 한마디로 영어로 말하기가 안되는 것입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 돌아와서 박사과정에서 있으면서 영어듣기는 퇴보하는데 영어로 말하기는 더 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박사과정 세미나 시간에는 교수님들이 강의는 거의 하지 않고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필자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강의하시다가 귀국하시면서 당신이 가르치는 모든 박사과정에서도 100% 영어만 사용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경우에는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발표할 때 영어가 더 잘되는 겁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발표나 토론을 할때 원어민 학생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었나 봅니다. 솔직히 원어민 학생들 보면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난무하는 영어의 향연속에서 교수님이나 다른 학생이 내 어눌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신경쓰다가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영어로 말할 때는 그런 현상이 줄어들더군요.

그런 현상은 홍콩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홍콩사람들에게도 영어는 외국어이다 보니 세세한 어법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입니다. 그래서 저도 좀더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었고, 지금은 강의나 논문 발표에 있어서 준비만 충분히 하면 큰 애로없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영어강의를 준비할 때는 철저히 말하기, 그것도 public speech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영어강의 준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 앞서 한 가지 희망적인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도 영어 강의 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제 주변에서 그런 예를 많이 보았습니다. 실제로 한국 유학생 출신 중에 미국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에 강의를 맡거나 졸업후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면서 Teaching award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한국 교수님은 홍콩의 모대학에서 재직하면서 거의 매년 강의평가에서 최고점수를 받아 수많은 Teaching award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분들은 원어민처럼 발음이 굴러가서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어로 강의를 잘하는 한국 교수님들 중에는 Korean accent가 두드러지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차이를 만들까요? 그 분들은 하나같이 복잡한 개념을 영어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능력은 선천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씨가 말하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저 사람은 한국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 선택과 명쾌한 메시지로 유엔의 수장에 오른 것입니다. 필자도 스스로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지 오래입니다. 대신 반기문씨처럼 원어민이 들어도 명쾌하고 설득력있게 말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목표를 정했다면, 실제 강의 준비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1단계: 강의계획
강의계획은 강의 목적과 강의 대상을 항상 생각하면서 세워야 합니다. 강의계획서(syllabus)에는 강의 일정, 교재와 참고자료, 평가방법, 시험과 과제 등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영어 강의에는 항상 외국학생이 들어올 것이다는 전제하에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강의계획서에 학생들이 궁금할 만한 사항들을 가능하면 모두 넣고, 한 학기동안 실천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syllabus와 본인의 교과목 이름을 영어로 입력하면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강의계획서는 가능하면 빨리 공개해서 학생들이 수강신청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강하는 학생들이 미리 영어강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을 매주 강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들의 참여는 영어 능력의 향상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졸업 이후에도 본인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첫 수업시간에 강조합니다. "This is a good opportunity for you to practice giving a presentation. In this class, nobody criticizes your mistakes. However, once you get a job, even a small mistake may damage your career. Where would you like to practice, in class or in the job?"

강의계획서에서는 반드시 '수업시간에는 영어만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서 강의를 하면 교수와 학생 모두 영어를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수업 이후에도 영어 질문만 받는 게 좋지만, 이 부분은 교수님들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우리말 질문을 받으면 수업시간에는 조용하다가 수업 끝나고 질문세례를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2단계: 강의자료 준비
강의자료는 가능하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대부분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말 강의와는 달리 매주 강의에 앞서서 연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충이나마 자료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학기가 진행되면서 소위 말해 하루벌어 하루먹는 (하루 강의준비하고 다음 날 강의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강의자료를 준비할 때는 이용가능한 소스를 총동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다른 교수님들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과거에 영어로 강의한 경험이 있는 교수님의 강의자료를 얻으세요. 꼭 그대로 쓸 필요는 없지만, 강의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음으로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활용하세요. 원서교재가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교수용으로 강의해설서와 각종 참고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대개 파워포인트 파일을 함께 제공하는데 강의에서 파워포인트를 쓴다면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제 경우에는 출판사 파워포인트 파일을 제 강의 목적에 맞게 바꿔서 쓰고 있습니다.

강의 자료를 준비할 때 한 가지 명심할 사항은 너무 많은 내용을 담지 않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교수와 학생 모두 영어 강의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 내용까지 많으면 한마디로 숨이 막히지요. 중요한 사항을 중심으로 덜 중요한 것은 과감히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신, 중요한 내용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수업시간에 적은 내용을 가르칠 수록 강의평가는 더 좋게 나온다고 하시더군요.

강의자료는 본인이 사용할 파워포인트 파일과 강의 노트가 필요하고, 학생용으로 배포할 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파워포인트 파일을 만들고 슬라이드별로 추가로 노트를 작성하여 강의노트로 사용합니다. 학생들에게는 노트가 포함되지 않은 파워포인트 파일을 과목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필요한 추가자료를 함께 공개합니다. 어떤 교수님은 파워포인트에서 설명하기 힘든 내용을 별도로 각 장별 요약 노트로 만들어 제공한다고 들었습니다. 교재와 함께 제공되는 강의해설서의 자료를 활용한 사례입니다.

이런 추가자료들은 영어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경제학과에서 인도 출신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그 분은 정말 인도 액센트를 심하게 쓰셨습니다. 심지어 미국학생들도 못 알아 듣는 부분이 종종 있다고 불평할 정도 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분의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의 강의 노트를 제공했는데 강의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여서 설명을 알아듣기 힘들면 노트를 보고 이해를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시험 기출문제를 모두 노트에 공개해서 학생들이 미리 시험 준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전체 배점의 40-60%는 기출문제를 충분히 이해하면 풀 수 있는 문제여서 낙제는 면할 수 있게 한 반면, 30-40% 정도는 기출문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제를 내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였습니다.

3단계: 강의 연습
영어강의에서는 매주 강의에 앞서서 강의 연습이 필수적입니다. "Practice makes perfect."이란 말처럼 연습만이 좋은 강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엔 강의 전 주말에 파워포인트 파일과 강의노트를 검토하면서 실제 강의를 구상합니다. 이때는 어느 부분을 강조할 지, 어느 부분에서 사례를 들지, 어느 부분에서 휴식시간을 가질 지 등을 검토하고 메모하면 좋습니다. 또한, 학기초에 준비한 파워포인트 파일을 강의용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의 전날이나 강의일 아침에 최소한 1-2시간 정도 리허설을 합니다. 영어강의 경험이 적은 분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소리내서 연습해야 합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은 실제 강의에서 큰 도움이 안됩니다. 가능하면 서서 하는 것도 좋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원어민 앞에서 리허설을 해보고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동영상 촬영과 원어민 강사의 협력을 지원한다면 더욱 좋겠지요.

시간이 충분하다면 두 번 리허설 하는 것이 좋습니다. TV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대본 읽기와 현장 리허설을 나눠서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첫번째는 파워포인트 파일을 그냥 소리내서 읽습니다. 이 단계는 각종 용어를 입에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두번째는 실제로 강의하듯이 파워포인트에 없는 사례나 추임새를 넣어가면서 연습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파워포인트를 읽으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강의중에 파워포인트는 참고사항이지 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려면 모든 내용을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서 설명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강의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강의의 핵심입니다. 이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리허설 과정은 영어강의를 자주 하지 않는 교수님들에게 더욱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거의 같은 과목을 영어로 강의한 지 벌써 3년이 되가지만, 리허설을 충분히 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은 강의의 품질면에서 차이가 큽니다. 특히 월요일 강의는 그 격차가 더 큰 데, 주말에 가족과 우리말을 하다가 월요일에 갑자기 영어를 하기가 쉽지 않아서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의할 때 최선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강의 전날은 무리한 음주나 가무를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은 우리말 강의를 수십년동안 해오신 과목이었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한결같이 강의 전날 또는 당일날 아침에 강의 내용을 검토하곤 하셨습니다. 생활 패턴을 강의 스케줄에 맞추어 강의에 영향을 줄만한 약속은 가능한한 그 전날에 잡지 않으셨습니다. 제자 교수가 다음 날 강의가 있다면서도 밤늦게 음주를 하는 모습을 보시면 "X교수, 이러면 타락한거야."라고 조용히 꾸짖으셨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마치 강의를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것처럼 여기셨습니다. 영어강의는 우리말 강의보다 몸상태나 집중력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4단계: 실제 강의
실제 강의에 들어가면 자신감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신감은 많은 연습과 경험에서 나옵니다. 교수가 자신있게 가르치면 다소간의 어법상의 오류는 듣는 학생에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특히 첫 강의가 중요한데 한 학기동안의 계획과 영어강의의 필요성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수 스스로 자신의 영어실력과 영어강의 경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학생들 앞에서 인정하고 대신 함께 노력하자는 식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아울러 학생들과의 소통의 창구를 항상 열어놓아야 합니다. 질문하는 학생에게는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다소 실수하는 학생에게는 더욱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칭찬은 아무리 해도 모자랍니다.

저는 생애 첫 강의를 영어로, 그것도 석사과정 학생들에게 회계학 기초를 가르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습니다. 학부에서 회계학을 한번도 수강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회계학 기초를 가르쳤기 때문에 우선 제가 강의내용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석사과정생이라서 동기부여도 잘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강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학생도 7명 뿐이라서 마치 후배들과 세미나실에 모여서 토론하는 식으로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오래산 교환학생이 있어서 종종 제 영어를 듣는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의 강의가 평생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5단계: 강의 결과 검토
영어 강의를 하면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솔직히 되새기기 싫은 정도의 형편없는 강의일수도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반성이 필요합니다. 계획했던 것과 실제 강의가 어떻게, 왜 달랐는지 비교하고 어떻게 하면 다음 강의에서 좀 더 나은 강의를 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수업 중간 중간에는 물론이고, 수업 끝나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영어로 된 강의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지, 발음이나 액센트에는 문제가 없는 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 못한다면 그것이 영어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강의를 받으면 학생들의 대표적인 불만은 '영어를 못 알아 듣겠다'입니다. 모든 불만이 교수의 영어실력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막상 원어민 학생에게 영어를 못 알아 듣겠느냐고 물어보면, 가끔 이상한 표현이 있지만 의외로 알아들을 만하다는 반응이 많을 겁니다.

그럼, 왜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못 알아 듣겠다'고 할까요? 바로 영어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용 전달 방식의 문제입니다. '우리말로도 이해를 잘 못하겠는데 영어로 어떻게 이해하냐'는 불만이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학생들에게는 강의내용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따라서, 교수가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요.

해결방법으로 교수가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합니다. 눈높이를 학생에게 맞추어 추상적인 설명 대신 사례나 예제 중심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은 미리 예습을 해야 합니다. 영어강의를 아무런 준비없이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지요. 학생들에게 예습을 강제하기 위해서 매 수업시간 초에 쪽지시험을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자연스럽게 출석체크도 함께 됩니다.

결국 영어 강의는 교수, 학생, 대학이 함께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전인적인 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교육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추가] Speaking From a Podium: Simple Tips to Get Started
강의 준비에 대한 참고가 될만한 글입니다.

한국내 대학의 영어 강의가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

한국의 대학에서 영어 강의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나, 실제 운영은 많이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오죽했으면 대학교 영어 강의는 '개그쇼'?라는 글이 온라인에서 주목을 받겠는가? 이 글에서 지적하는 영어 강의의 실태는 한국에 있는 다른 교수님들로부터 대충 들은 얘기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무늬만 영어강의이고 거의 우리말로 강의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학교 측에서 영어로 강의하는지를 감시한다는 소문도 있다. 교수도 학생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안된다. 학생들은 "한글로도 이해가 안되는데 영어로 수업이라니?"라고 불평한다. 심지어 영어로 국문과 강의까지 한다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트위터 ID @sensitive_ego님이 "저희학교는 국문과수업도 영어로 합니다"라고 확인해주셨습니다).

근본원인은 대학의 교육 목적에 바탕을 두지 않은 맹목적인 영어강의 도입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대외적인 목표에 맞춰서 반강제적으로 일정 비율의 영어강의를 도입하고 있다. 교육부나 각종 대학평가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시용에서 시작된 영어강의가 별다른 준비없이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우리말 강의도 근본은 같지만, 영어강의일수록 교육 목적에 기반을 두고 사전에 충분히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영어강의는 단순히 우리말 강의를 통역하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강의내용은 동일하더라도 영어의 특성에 맞게 강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교수들이 강의 내용 준비와 강의 연습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우선 영어강의를 위한 기본적인 언어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다행히 많은 교수님들이 해외에서 학위를 받거나 체류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영어강의를 위한 기본은 되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영어강의 경험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부족한 경험을 메꾸는 방법은 부단한 노력과 준비 뿐이다.

준비를 할 때는 강의내용을 머리로 뿐만 아니라 입으로 몸으로 익숙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사례를 자주 들고, 긴 글보다는 그림이나 그래프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강의노트를 사전에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중간중간에 학생들이 편하게 영어로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질문이나 토론에 칭찬과 긍정적인 피드백은 필수적이다. 구체적인 영어강의 준비방법은 다음에 쓸 글에서 제시하겠다.

둘째,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영어강의에 대한 세밀하면서도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교수가 아무리 준비를 하려고 해도 학교에서 지원이 없으면 힘들다.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에게 강의시간 수를 줄여 주는 것은 기본이고, 가능하면 같은 과목의 영어강의를 같은 학기에 여러 강좌 또는 매년 반복해서 강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재직중인 학교에서 3년째 강의중이지만, 실제 강의한 과목은 회계원리 1, 2 두 과목 뿐이다. 매 학기 같은 과목을 2-3강좌씩 번갈아 가르치기 때문에 영어강의지만 부담은 적은 편이다.

처음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들을 위해서 원어민 교수를 초빙해서 교수법 강좌를 여는 것도 좋다. 필자가 있는 경영대학에서 주관한 적이 있는 사례교육 세미나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영어강의를 한 경험이 많은 교수님이 있다면 그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학교측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의 학과에선 전공 기초과목의 경우 Course coordinator라고 해서 해당 과목을 수년간 가르친 교수가 다른 교수들에게 강의자료와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제도가 있다. 덕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강의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유수의 미국과 유럽대학에서는 처음 강의를 맡는 박사과정 학생이나 신임 교수들이 경험많은 교수로부터 강의노트를 받는 것이 흔하고 심지어 강의 평가가 좋은 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도록 권하고 있다.

아울러 충분한 검토를 통해 어느 과목에 몇 강좌 정도를 영어로 할 지를 정한 뒤 일관되게 매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들도 그에 맞추어 계획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교육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과목에서 영어강의가 더 효과적인 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영어권 국가에서 학문적인 선도를 하고 있는 분야 (경영학이나 공학)는 쉽게 영어강의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국문과나 국사학과 같은 경우에는 특수한 과목 (예, 언어간의 비교와 국가간의 비교)을 제외하면 당연히 우리말로 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가 재직중인 대학에서는 영어강의가 기본이지만 교수회의를 통해 예외적으로 중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사전에 정하고 이를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영대학 내에서는 중국경제론이나 중국의 회계 등과 같은 과목은 중국어로 강의한다.

영어강의는 강좌별 최대 인원을 30명 내외로 제한하여 학생들이 좀더 편안하게 교수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영어강의에서 발표와 토론을 적극 도입하려면 30명이 현실적인 상한선이다. 적은 규모의 강의는 교수에게도 보다 강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학생들에게도 영어강의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학생들의 불만을 수렴해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학점 차원의 혜택을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우리말 강의는 A, B, C, D 학점 비율을 엄격히 제한하는 반면 영어 강의에서는 그 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영어강좌 수강생들이 전체적으로 학점이 잘나오게 배려한다. 아울러 영어 강의를 수강하기 이전에 학생들이 필요한 영어과목을 이수하고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능력을 갖추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 이때 영어과목도 실제 강의시간과 생활에 쓸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연습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학생들도 어린 아이에게 밥먹여주듯 떠먹여주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대학교육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의 전에 미리 교재와 강의노트를 읽어보고 들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습이 복습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대다수의 유학생들이 영어강의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내용이다. 영어는 아는 만큼 들린다.

영어강의에는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보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충분히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교수의 준비와 학생들의 참여가 모두 필요하다. 교수는 발표나 토론의 주제와 관련 자료를 미리 준비해야 하고, 결과를 성적에 반영하는 방법을 결정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학생은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배운다는 기분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 구성원들은 영어강의를 도입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충분한 준비와 면밀한 실행이 없이는 영어강의는 문자 그대로 코미디가 될 수 밖엔 없다. 다음 글에서는 교수가 어떻게 영어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지를 논의해 보겠다.

영어강의가 한국 대학에 필요한 이유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대학내 영어강의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홍콩에서 영어로 강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안 짚고 넘어갈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을 세 가지 글로 정리해 본다. 이 글은 그 첫번째로 영어 강의가 한국 대학에도 필요한 이유이다.

대학들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영어강의의 이유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 배양과 대학의 국제화이다. 사실 둘 다 우리 대학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먼저 영어 능력 문제를 살펴보자. 인문사회계열은 그나마 낫지만 이공계열의 학과생들이 대학에 가면 제일 먼저 당하는 문제가 바로 영어와 수학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영수 위주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왜 또 영수가 문제냐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의 동생은 전기전자제어과 출신이다. 필자가 다닌 경영학과는 학부 전공 과목은 거의 한글 교재를 사용했다. 그런데 동생은 1, 2학년 때부터 영어 교재가 나오는데 이건 내게는 상상초월이었다. 공대생들의 공포라는 공업수학(2학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교재들이 영어로 된, 그것도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었다. 그래서 동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록 오래된 판이지만 번역된 교재를 별도로 보고 있었다. 영어로 된 수학 교재를 동시에 따라가느라 밤샘을 말그대로 밥먹듯이 해도 힘겨운 나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죽했으면 동생이 차라리 중고등학교때 영어책으로 수학을 배웠으면 좀 나았겠다는 말을 했을 정도겠는가?

필자도 학부 고학년부터 하나 둘씩 원서를 보기 시작했고, 석사과정에서는 거의 모든 전공과목에서 원서로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 강의였지만 실제로는 강의 내용 중에 영어 단어가 무수히 난무했고, 우리말은 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예를 들거나 농담을 할 때는 우리 말이 양념 역할을 했지만, 가끔은 차라리 영어로 강의 듣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한 가지 원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 나라 교재들이 상당수가 거의 원서의 번역본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적지 않은 교재에서 글쓰기 (사실은 번역) 수준이 낮아서 나중엔 원서를 보는 게 이해가 더 잘 될 지경이었다.

그럼, 어떤 이는 읽기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말 강의에서 영어 원서를 쓰면 읽기만 가능하다. 하지만, 영어 강의에서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모두 가능하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오랜 문제가 바로 읽기에 비해 다른 영어 활동이 거의 바닥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막상 직장에서 영어로 업무를 보려면 어학연수나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영어는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우면 되지 않느냐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하나 물어보자. 하루에 몇 시간이나 영어를 실제로 쓰십니까? 우리 영어 교육의 문제는 영어 시간 따로, 실제 사용 따로라는 점이다. 영어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에게 영어 쓰는 기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내 교육만으로 영어를 잘하게 된 극소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어에 몰입해서 거의 24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영어만 집중해서 연습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어는 학습 대상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생활 언어로서의 영어이다. 생활속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영어를 쓰기 힘들다. 하다 못해 기본적인 전공 용어도 막상 영어로 써보지 않으면 대화가 안된다.

다음으로 대학의 국제화를 살펴 보자. 우리 나라의 대학의 국제화 수준은 정말 한심한 수준이다. 최근 외국인 교수의 비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지만, 재외교포를 제외한 순수 외국인 교수는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현재 재직중인 대학에서 작년에 박사과정을 졸업하는 학생이 한국의 모대학에서 취업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당연히 그 학생은 필자에게 조언을 구했고, 필자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 했으나 역시나 부정적인 면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급여 수준은 홍콩내 대학에 비해 그다지 좋지 못했고, 대학 행정적인 면에서 외국인 교수를 위한 편의 (예, 영어로 된 공문서와 규정)를 제공받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가족이 있는 그 학생에게 한국어를 못할 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 줄 수 밖엔 없었다.

외국 학생의 비율은 어떤가? 학교마다 저마다 외국 학생 유치에 안간힘이지만, 실제 외국학생들은 어학연수 수준의 한국어 강좌 들으러 온 학생이거나 개도국에서 한국을 배우러 오는 유학생들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높은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오는 외국 학생은 극소수이다. 우리 대학의 수준이 외국 대학에 비해 뒤처진 면도 없지 않으나, 우수한 연구 실적을 올리는 일부 대학의 학과에도 유학생을 찾아 보기는 어렵다. 영어 강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시간 내에 우리말 강의를 따라 오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간 체류하는 교환학생과 한국어를 접하기 힘든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이 들을 만한 강의는 일부의 영어강의를 제외하면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영어 능력 배양과 대학의 국제화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대학 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대학 교육의 근본 목적은 전인적인 인재 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인(Whole Person)이라는 것은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 본다. 그렇다면 영어강의가 대학 교육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왜 필요한가?

첫째, 영어강의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필요하다. 변화에 적응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은 소위 말하는 상아탑과 같은 낡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켜 주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미래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굳이 학술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새로운 지식은 영어로 생산된다. 인터넷에도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영어 이용자들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학문적으로 갈라파고스 현상을 겪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도 본인은 영어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체재 중인 외국인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의 비율도 늘고 있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은 영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소통하지 않는 자는 고립되고, 고립된 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도태된다.

둘째, 영어강의는 학생들에게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가끔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이 영어가 무슨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듣는다. 그러면 나는 간단히 대답한다. "영어를 하면 노는 물이 다르다고." 히딩크는 네델란드 사람이지만 영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감독 생활을 해 왔다. 필자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홍콩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필자의 동생은 가끔 만약 영어만 된다면 해외 유수의 IT 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있을 텐데 하는 푸념을 한다.

지금은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다. 따라서, 인적자원 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엔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 실업률이 최고 수준이다. 필자는 그 대안을 인적자원의 수출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라면, 국내에서의 일자리 부족은 남의 나라 일이다.

셋째, 영어강의는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육에도 좀더 다양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이다.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나갈 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영어강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외국인 교수와 학생을 끌어들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국내에서 좋은 영어강의를 제공하는 것이 비용측면에서 더 저렴하다. 더구나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외로 교환학생으로 나가서 혜택을 보고 있다면 우리나라 대학들도 외국에서 오는 교환학생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상의 설명처럼 영어강의는 한국 대학 교육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영어강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취지는 좋으나 잘못된 실행으로 부작용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현재의 영어강의가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2010년 3월 6일 토요일

경영학 교수의 인적자원 시장

몇 주 전에 교수 급여 수준이 대학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한 적이 있다. 교수노동시장이 점차 세계화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교수 채용에 대한 투자가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다. 인문학과 같이 국제화가 더딘 분야도 있지만, 자연과학 및 공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분야는 점차 교수들의 국가간 이동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내 전공인 경영학, 특히 회계학의 예를 통해 교수 인적자원 시장의 현황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나라가 우리나라, 미국, 홍콩이므로 세 나라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교수노동시장을 설명해 보겠다.

1. 급여 수준
급여 수준은 미국, 홍콩, 우리나라의 순서로 서열화된다. 다른 전공과는 달리 적어도 경영학에 있어서는 미국이 거의 모든 면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회계학 박사학위를 마친 신임 조교수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미국은 대학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상위권 대학 (톱 20위권)의 경우에 연봉 17-20만달러수준이고, 홍콩의 중요대학은 10-12만달러, 한국의 상위권 대학은 5-6만달러 정도이다 (모두 US달러). 이렇게 급여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능력있는 분들이 아시아권 학교로 돌아오기 보다는 미국에 머물러 있으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박사학위 받으러 유학갔던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 현상은 자연과학이나 공대쪽에서도 이미 발생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가 조건에 맞는 신임교수를 뽑지 못하고, 연구 성과가 좋은 교수를 미국 대학에 뺏기고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미국의 연구중심대학들은 기본적으로 1년에 9개월 근무를 기준으로 계약을 한다. 따라서, 여름방학 3개월 동안에는 교수가 어디가서 뭘해도 상관없다. 계절수업을 하면 추가로 돈을 받는다. 홍콩이나 한국대학은 연간 12개월 근무가 기준이다. 홍콩대학들이 갈수록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기 어려워지고, 한국대학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근본원인은 결국 급여 차이에 있다. 급여차이는 단순한 월급의 차이 뿐만 아니라 각종 연구비 지원과 부대 혜택에서도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

2. 전공간 임금격차
미국의 경우에는 전공간 교수 급여차이가 상당히 크고 심지어 경영학 내의 세부전공간에도 급여 격차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2001년에 같은 학교내에서 회계학 신임 조교수 연봉이 15만달러였던 반면 경제학에서 연봉이 가장 높던 정교수 연봉이 채 10만달러에 못 미쳤다. 그래서, 경제학 교수하다가 다시 회계학 박사학위 따서 전공을 바꾼 분도 실제로 있다. 경영학 내에서는 회계학과 재무쪽이 월급이 가장 높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경우에는 조교수 초봉이 회계학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이런 급여 차이는 학문의 중요성과는 무관하게 노동시장의 수요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회계학 박사학위 배출자가 경영학의 다른 세부전공 또는 경제학의 세부전공별 박사학위 배출자보다 적다. 그에 반해 회계사 시험등을 위해 회계학 강의 수요는 경영학의 다른 세부전공보다 많다. 즉, 회계학의 경우 교수 공급은 적고 교수 수요는 많으니 연봉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실적이 좋은 교수들은 연봉을 30-50%씩 올려서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나 홍콩의 대학에는 전공간의 임금 격차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전공별로 교수 채용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홍콩의 경우 타 전공의 경우에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비슷하거나 더 높은 연봉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상당히 우수한 인력을 스카우트해 올 수 있다. 그에 반해 회계나 재무의 경우에는 미국보다 연봉수준이 낮기 때문에 좋은 사람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우리나라도 회계학쪽은 능력있는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

3. 결론
좋은 교수를 구하려면 결국 투자를 늘리는 수 밖엔 없다.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려면 국제 시세에 맞추어 그에 합당한 연봉을 제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제시하는 연봉과 연구조건이 다른 나라의 대학에 비해 차이가 날수록 그만큼 좋은 교수는 물건너 간다. 이제 애국심이나 모교에 대한 애정에 호소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미국에서는 학과단위로 1, 2명의 최고수준의 연구자를 스카우트해서 몇 년만에 연구실적이 급상승한 사례가 적지 않다. 나아가 대학 차원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단시간에 연구성과를 올린 학교가 존재한다. 홍콩 과기대가 그 예이다. 홍콩과기대는 1991년에 설립된 상대적으로 신생 대학이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로 미국 등지에서 유망한 교수들을 초빙해서 단숨에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했다. 회계학의 경우 1990년대에 3대 학술지 기준으로 세계 5위권의 연구성과를 낸 적도 있었다.

문제는 대학내 전공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특정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나 홍콩의 대학에서는 왜 회계학이나 재무 교수들이 연봉을 더 줘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전공에 동일하게 자원을 분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전공별로 강의에 대한 수요나 교수의 공급이 다른 현실에서 모든 전공에 똑같이 (또는 사람 숫자대로) 자원을 분배한다면, 결국 특정 전공에는 필요이상의 자원이 제공되고 다른 전공에는 자원의 부족이 발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전공별로 동일하게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역으로 대학차원에서 전공별로 투자우선순위를 매기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즉, 동일한 자원배분이 투자가 절실한 분야를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뿌린만큼 거둔다는 말처럼 인적자원에 투자를 해야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도 향상된다.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회계부정이 적발되었을때 창업주가 CEO이면 CFO만 죽어난다?

이번 달에 배달된 Accounting Review를 보다가 재미있는 논문을 발견했다. 기업의 회계부정이 적발되었을 때 그 결과 누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느냐를 연구한 논문이다. 결론은 창업주가 CEO (Chief Executive Officer)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CFO (Chief Financial Officer)가 책임을 지고 물러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창업주나 그 일가가 지배하는 기업에서 회계부정이나 조세포탈이 적발되면 월급쟁이 사장이나 다른 회계 및 재무담당 임원이 덮어쓰고 감옥까지 다녀오는 경우를 종종 보지 않았던가? 이런 현상이 미국에서도 있다니 흥미로운 결과이지만, 한편으로 사람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Andrew, J.L., Michelle, L., Accounting Irregularities and Executive Turnover in Founder-Managed Firms. The Accounting Review 85, 287-314.

2010년 2월 6일 토요일

IPad에 관한 전문가 대담 동영상 번역

원본은 찰리로즈쇼 iPad에 관한 대담입니다. 마이클 앨링턴(Techcrunch) , 월트 모스버그(WSJ), 데이빗 카(NYT)가 출연합니다. 시간은 23분이고 관심있는 분은 원본을 참고하세요.

오늘 아침에 이찬진 님이 트윗으로 소개한 동영상을 제가 중요한 것만 번역해서 트윗에 올린 것을 정리했습니다. 앞에 있는 숫자는 실제로 트윗에 올린 순서이며 (먼저 올린 글이 숫자가 더 높습니다), 읽기 편하게 순서를 재정렬 했습니다. 대담형식이다 보니 세 명의 전문가가 번갈아 가면서 찰리 로즈의 질문에 답변 및 자신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전문가의 이름을 번역에도 붙였습니다.

부족한 영어실력이 곳곳에 보이니 그냥 참고삼아 보세요. 중간중간 덜 중요하다 싶은 것은 건너갔고, 의역도 꽤 있습니다. 당연히 오역도 있을 테니 발견하시면 답글로 남겨주세요.

28. @chanjin 모스버그: 우선 아이패드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아이북스토어)가 중요하다.
27. @chanjin 모스버그: 손에 착 감기고 속도도 빠르다. 무엇보다 아이폰과는 다른 성격의 기기다. 아이폰에서 안되는 오피스 프로그램들이 가능하다.
26. @chanjin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이 이미 존재한 상태에서 출시됐지만, 아이패드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 한다.
25. @chanjin 애링턴: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이라는데 동감. 어디서든 인터넷과 미디어 접속이 편하므로 사람들이 좋아할거다.
24. @chanjin 카: 역시 소프트웨어를 강조. 미디어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관심을 보일것.
23. @chanjin 카: 두 가지 킬러 앱 - 게임과 이북리더 -을 언급. 아마존 킨들도 동영상과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아이패드의 컨텐츠와는 경쟁이 힘들다.
22. @chanjin 모스버그: $499 충격적인 가격이다. $799 정도를 예상했다. 경쟁자들을 힘들게 하는 가격이다.
21. @chanjin 애링턴: pc에 비해서 저렴한 칩을 쓰지만 터치스크린 패널등의 단가가 높기 때문에높은 수익성을 기대하긴 어려울듯. 넷북이나 아이폰의 수요를 감안하면 첫해에 1백만대 이상을 판매가 기대됨 about 1 hour ago from Echofon
20. @chanjin 애링턴: 불만점 - 플래쉬가 안된다. 그래서, Hulu, 플래쉬 영화 게임을 볼수없다.
19. @chanjin 카: $499 최저가격은 fake다. 사람들은 더 높은 사양을 원할것. 멀티태스킹 안된다. 소파에 앉아서 트윗을 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볼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18. @chanjin 모스버그: 웹캠이 없다. 플래쉬가 없는 건 애플 (모질라 등도)이 html5를 선호하기 때문. 애플은 html5이 장기적으로 플래쉬의 역할을 해줄거라고 생각하는듯.
17. @chanjin 애링턴: hulu도 아마 플래쉬없이 가능해질것. 모스버그: 유튜브는 벌써 html5로 가능.소비자는 동영상이 잘돌아가면 포맷에는 관심이 없다.
16. @chanjin 카: 충분한 컬러 스크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패드용 앱과 컨텐츠 개발에 뛰어들거다 about 1 hour ago from Echofon
15. @chanjin 카: 아마존과 킨들에겐 최악의 날이다.컬러 사진과 동영상이 첨부된 컨텐츠는 멋질것이다.
14. @chanjin 모스버그: 아마존도 컬러 단말기를 만들거다.아마존은 이북기능과 긴 배터리시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애플은 하루정도밖엔 못가는 배터리지만 다양하고 화려한 기능에 도박을 걸었다.
13. @chanjin 모스버그: 사실 벌써 아이폰용 킨들에서 얼마든지 컬러로 볼수 있다.
12. @chanjin 애링턴: 애플이 아이패드용으로 AT&T의 무선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계약한 것은 실망스럽다.구글 넥서스원처럼 언락폰과 같은 것을 원했다.
11. @chanjin 모스버그: 애플도 소비자들이 AT&T의 서비스를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무도 왜 애플이 다른 통신회사로 옮기지 않는지 모른다.애플과 AT&T사이의 구체적인 계약은 대외비인데 무슨 강제규정 때문이 아닐까 추측.
10. @chanjin 모스버그: 향후의 가격은 첫 가격대와 비슷할 수도 내려갈수도 있다.아이폰의 경우 처음엔 599달러에서 60일후에 399달러로 내렸다.그때도 판매가 안되서가 아니라 좀더 빨리 대중화시키려해서였다.비슷한 것이 아이패드도 가능.
9. @chanjin 애링턴: 애플은 아이패드 단말기 이외에도 search bar (구글툴바 같은 것을 말하는듯)와 앱스토어에서 상당한 수익을 얻을듯 28 minutes ago from Echofon
8. @chanjin 모스버그: 스티브잡스는 소비자에게 무엇을 개선할까요 물어보는 market research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다.
7. @chanjin 모스버그: 스티브잡스는 "What people don't know they want yet" 사람들이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는것을 찾아서 그것을 멋지게 구현해준다.
6. @chanjin 모스버그: 빌게이츠조차도 오랜동안 윈도우태블릿을 강조했지만 실패했다.스티브잡스는 각종 IT기술(소프트+하드웨어)을 통합해서 사람들에게 왜 이게 여러분의 생활에 필요한지 설득력있게 보여준다.그게 스티브 스타일이다.
5. @chanjin 카: 스티브잡스도 항상 성공한건 아니다.애플 TV의 예를 드네요.만약 아이패드도 초기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수도 있다.
4. @chanjin 수정-방금전 건 애링턴의 발언이었습니다.- 애링턴: 스티브잡스도 항상 성공한건 아니다.애플 TV의 예를 드네요.만약 아이패드도 초기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수도 있다.
3. @chanjin 애링턴: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 전까지는 카메라 기능이 포함될 거로 예상된다.
2. @chanjin 카: 스티브잡스는 애플의 전략과 비전을 진두지휘해 왔다. 그의 건강문제에도 불구하고 줄곧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 @chanjin 제 허접한 동영상 번역은 여기까지입니다. 원본은 찰리로즈쇼 iPad에 관한 대담. 마이클앨링턴(Techcrunch) , 월트모스버그(WSJ), 데이빗카(NYT) 출연. 23분. http://tcrn.ch/drYiTv

월급 삭감과 대학의 경쟁력

어저께 대학 행정부총장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제목은 "A Message from the Vice-President (Administration) and Secretary," 본문에 아무런 내용도 없고 첨부파일만 두 개 덜렁 있었다. 하나는 html 파일이고, 나머지 하나는 pdf파일. 혹시 바이러스가 아닌가 해서 백신으로 확인한 다음 열어본 내용은 대학내 대부분의 교직원의 월급을 일괄적으로 3월달부터 5.38% 삭감한다는 내용이었다. 월급이 일정 금액 이하 거나 작년 가을 이후에 임용된 사람들은 이번 삭감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몇 달전부터 그런 조짐이 이미 있었다. 작년에 재정적자 확대로 인해 홍콩 정부 공무원들의 월급을 5.38% 삭감한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더니 작년말에 홍콩 내 몇몇 학교에서 같은 비율로 교직원 월급을 줄인다는 논의가 있더니 하나 둘씩 급여 삭감을 확정지어 갔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지난 달에 비슷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이번에 확정된 것이다.

이번 급여 삭감의 근본 원인은 역시 신용위기에 따른 경기불황이 있다. 불황으로 인해 세수는 줄고 경기진작을 위해 세출이 늘어나서 홍콩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게다가 홍콩내 신문에서 다룰 정도로 대학의 재정적자 역시 심각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홍콩 대학들은 공립대학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적자로 인해 지원액을 삭감하면서 자연히 경비절감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우기 여러 대학들이 자체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신용위기로 인해 막대한 금액의 투자손실을 보았다. 즉 정부의 지원은 줄고 자체 수익마저 말라버린 것이다.

우리 학교 내에서 급여 삭감에 대한 논의는 채 1달 정도밖엔 안되었지만, 다른 학교에선 벌써 3-4개월 전부터 비슷한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경비 절감의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월급 깎이는 것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우선, 각 대학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만 공식적으로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급여 시스템도 대외적으로는 정부 공무원 급여와 독립적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 상당히 비슷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대학에 대한 지원 금액을 조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교직원 급여를 통제할 수 있는데 있다. 또한 대학 자체적으로 조달한 기부금은 교직원 급여에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독립적인 운영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말로만 독립채산제라고 하면 무슨 소용인가?

둘째, 의사결정과정이나 업무처리 과정은 상당히 불만스럽다. 의사결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대다수의 교직원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월급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고용시에 계약서에 급여액을 명시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조만간 삭감 동의를 받는다고 한다. 고용계약서와 상충되는 법적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대외적으로 모양새를 좋게 만드려는 것 같은데 솔직히 월급삭감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이번 급여 삭감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홍콩 정부는 신용위기 직전인 2008-2009년에 걸쳐 재정흑자를 국민에게 돌려준답시며 적지 않은 소득세를 환급 또는 감면해 주었다. 심지어 돈이 남아 도는지 전기요금까지 인하해 주었다. 그때는 다들 좋아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바로 한 두 해 뒤를 예측하지 못한 근시안적인 행정이었다. 경기변동의 완화시키기는 커녕 경기변동을 부추긴 결과가 되었다. 또한, 학교 운영기금을 비효율적으로 관리해서 막대한 손실을 입힌 학교 행정 담당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급여 삭감에 앞장섰다.

셋째, 어찌 보면 가장 큰 문제는 홍콩 대학 교수들의 평균 월급이 거의 1997년 아시아권을 강타한 경제위기 당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IMF의 지원을 받았던 시기에 홍콩도 경기 침체를 겪었다. 더우기 2003년 홍콩에 사스(SARS)가 번지면서 경기가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 앉았다. 경기침체는 재정지원 축소로 이어졌고, 급여체계 전반을 바꾸게 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까지 홍콩 대학에 임용된 교수님들에 비해 2000년대에 임용된 교수님들은 기본 급여체계는 물론 연금 혜택 및 각종 수당 면에서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을 적용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예전 임금체계의 적용을 받는 분들은 연금 수령이 실제 납부액에 기준하는 것이 아니라 근속년수와 최종월급에 기초한 목표액에 따라 지급을 받았기 때문에 연금 수령액이 이자를 감안해도 실제 불입액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자녀 2명까지 국제학교에 보내도 될 정도의 교육수당과 소소한 각종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실제 납부액에 따른 연금을 받기 때문에 과거 연금체계에 비해서는 거의 20-30% 수준이고, 자녀교육수당은 없으며 주택수당도 예전의 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는 최상위권이었으며 미국의 대학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았던 홍콩 대학의 급여가 이제는 아시아권에서도 싱가포르 대학들에 밀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말에 다소 회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소득면에서 최근에야 겨우 1997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따라서, 이번 급여 삭감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체된 급여 수준은 기존 교수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기 힘들게 하며, 심하게는 뛰어난 교수들을 다른 나라에 뺏기는 빌미가 된다. 이미 교수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상당히 국제화된 인적자원 시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시장에서 정체된 급여는 홍콩 대학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상대적으로 많은 급여를 받는 전공인 회계와 재무 교수들에게서 문제가 두드러진다. 한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최근 5-6년간 홍콩내 대학 중에 회계쪽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대학의 교수를 부교수나 정교수급으로 채용해 온 경우는 전무하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북미 대학에서 졸업해서 오는 조교수는 간혹 있어도 부교수급 이상의 경력있는 교수님들은 전부 2000년 이전에 홍콩에 오신 분들로 예전 급여체계를 적용받고 계시다. 오히려 연구실적이 좋은 교수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경우는 종종 본다.

홍콩대학의 급여수준이 아직 우리나라 대학보다는 상당히 높지만, 장기적으로 정체된 급여는 국제적인 대학간의 인적자원 경쟁에서 뒤처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나도 논문이 잘되면 다른 나라로 떠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0년 2월 5일 금요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적 유사점 7가지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 (이하 MS)와 비슷하다고? 미친 거 아냐?

예, 제목만 보면 그런 소릴 들을 만도 하지요. 경쟁의 차원을 넘어선 두 기업의 오랜 투쟁의 역사는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을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맥킨토시의 전설적인 광고에서부터 Mac vs. PC 광고에 이르기 까지 두 기업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유사한 점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애플의 전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MS가 취해온 전략과 유사한 점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거기에 애플이 한 술 더 뜨는 경우도 있습니다.

1. OS를 장악한다.
컴퓨터 세상에서는 OS를 장악하는 자가 절대반지의 소유자처럼 세상을 지배합니다. 요즘은 아이폰 OS가 스마트폰 쪽에서는 PC에서 윈도우 OS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회사 모두 자신들의 OS에 맞는 개발툴의 보급에 적극적이지요. 멍석만 깔아놓은 다음, 재주부릴 곰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애플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스마트폰 플랫폼에서 독보적인 지위에 올랐습니다.

2. 폐쇄적 시스템을 선호한다.
MS는 철저히 윈도우 OS를 폐쇄적으로 관리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픈소스 계열의 리눅스 지지자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습니다. 애플 쪽을 보면 이건 더 폐쇄적인 시스템을 선호합니다. 맥 OS와 아이폰 OS는 물론이고, 앱스토어까지 철저히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일관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MS 쪽이 덜 폐쇄적으로 보일 정도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3. 독점적 권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MS가 윈도우 OS 때문에 이런 저런 독점관련 기소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끼워팔기 문제였지요. 애플도 소송만 안 당했지 결코 만만챦은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 시작이 기술적인 혁신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일단 독점적 지위를 갖추게 되면 그 부정적인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경제학에서도 독점의 원인은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합니다. 엄청나게 높은 마진율과 폐쇄적인 시스템은 결국 소비자들의 후생을 희생시키게 됩니다.

4. 경쟁을 싫어한다.
일단 독점적 위치에 오르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수를 쓰는 게 기업의 생리입니다. MS가 MS-오피스 시리즈로 워드퍼펙트나 로터스를 시장에서 밀어냈듯이 애플도 경쟁자들의 시장진입을 싫어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대놓고 구글이 안드로이드로 아이폰을 죽이려 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튠스에서 앱 설명에 안드로이드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라고 애플측이 요구했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구글의 모토 "Don't be evil"을 "It's a load of crap"라 했겠습니까?

5. 전략적 우위에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해서 주변 시장으로 진출한다.
MS는 윈도우 OS에 대해 다른 어느 회사보다 자세한 사항을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윈도우 OS 자체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MS 오피스만큼은 시장에 나와 있는 어느 오피스 프로그램보다 윈도우에서 잘 맞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윈도우 OS 출시에 맞추어 새 오피스 프로그램도 개발해 왔습니다. 이런 전략은 경쟁업체들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MS만의 강점입니다. 애플은 오랜 기간동안 맥OS를 통해 GUI기반의 OS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플 맥 OS의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인 UI는 MS 윈도우가 모방했다는 것이 정설일 정도입니다. 애플은 자신들의 강점을 아이폰에서도 유감없이 활용했습니다. 최근에는 또 다른 히트작품인 앱스토어를 아이북스토어란 전자책 판매에 적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6.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대신 적당히 새로운 시장에 들어간다.
MS 오피스가 처음 나왔을 때는 이미 시장에는 다양한 사무용 프로그램들이 공존했습니다. 그러다가 MS오피스가 천하를 통일해 버렸지요. 웹브라우저의 시작은 넷스케이프였지만, MS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팔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도 이미 MP3 플레이어와 PDA폰은 존재했습니다. 이번에 애플이 발표한 아이패드도 아마존의 킨들과 같은 E북 리더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러면 애플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놔서 다르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 두 기업이 비슷합니다. 게다가 아이패드 자체는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습니다. 아이패드를 통해 팔려고 하는 컨텐츠 판매방식도 이미 앱스토어를 통해 검증된 폐쇄적 유통방식입니다.

7. 첫번째 버전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해도 밀어 붙인다.
MS는 버전 3 부터 제대로 돌아간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윈도우 OS에서 두드러지는데 아무래도 적당히 새로운 시장 (다시 말해서 적당히 성장한 시장)에 주로 들어가기 때문에 기존의 제품에 비해 처음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버전 2, 3로 갈수록 뛰어난 인적자원의 활용으로 그럴듯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요. 애플의 아이폰도 첫 버전은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패드도 벌써 첫 버전이 아닌 다음 버전을 기다리는 분이 있습니다. 심지어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고 원하는 소비자도 많지만 전략적인 의도에서 일부 기능을 제외하거나 다음 버전으로 미룬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애플빠도 아니고 애플까도 아닙니다. 오히려 경영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애플은 성공하는 IT기업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애플의 경영전략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 특히 소비자에게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2010년 2월 2일 화요일

아이패드가 나와도 아마존은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다?

애플은 아이패드에 이북기능이 내장하고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이북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자연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아마존의 킨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전자잉크를 쓰는 킨들이 눈부심이 없는 화면과 긴 배터리 시간 때문에 아이패드와 함께 공존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아이패드가 킨들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아마존이라는 기업측면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이북 판매를 증대시킬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존이 컨텐츠 판매자이기 때문입니다. 킨들 기기 자체는 컨텐츠를 공급하는 매체일 뿐이고, 중요한 건 컨텐츠의 판매이지요. 따라서, 매체인 킨들 기기가 안 팔려도 다른 매체를 통해 이북을 팔 수 있다면 아마존은 현재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전체 이북시장의 확대를 꾀할 수 있습니다.

그럼, 킨들 대신 어떤 매체가 있을까요? 바로 아이패드입니다. 현재도 아마존의 킨들용 이북은 킨들 전용기기 뿐만 아니라 PC는 물론 아이폰 앱을 설치하면 아이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구입한 아마존에서 구입한 이북은 최대 6개의 기기에 설치가능하기 때문에 킨들 기기을 안 가지고 다녀도 아이폰으로도 쉽게 다운받아 볼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는 기본적으로 아이폰 OS를 쓰기때문에 아이패드용 앱도 쉽게 만들수 있을 겁니다. 만약 아마존이 아이북스토어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이북을 판매한다면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어도 아마존에서 이북을 구입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북의 숫자 면에서는 현재 아마존이 월등하고, 아마존이 종이책과 이북을 모두 판매하기 때문에 출판사 (특히 중소 출판사) 측에 가격인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북스토어에서 구입한 이북은 아마도 애플의 제품인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에서만 볼 수 있겠지만, 아마존에서 구입한 이북은 장차 거의 모든 플랫폼에서 읽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사장이라면 당장 아마존 이북을 아이패드는 물론이고 안드로이드와 모바일 윈도우에서도 읽을 수 있게 만들겁니다. 안드로이드 앱는 장차 휴대폰이외의 각종 모바일기기에도 장착되어 이북리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실제 사용해 본 경험상 이북 구입시 편의성은 아마존이 아이튠스를 통한 앱스토어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수의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이북을 판매하는 아마존이 우세하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윈도우 OS가 성능면에서는 뒤지지만 결국 수적 우위로 시장을 장악한 일이 이북시장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추가] 2월 3일 현재 아마존에서 매킨토시용과 블랙베리용 리더프로그램이 Coming Soon이라고 나와 있네요. 조만간 지원될 예정인가 봅니다. 저는 안드로이드용도 나오면 구글의 넥서스원을 사고 싶습니다.

[추가] 3월 23일 현재 아마존에서 아이패드용 킨들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며 간단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미국 최대의 오프라인 서점인 반즈앤노블도 아이패드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아이패드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고 있는 아이북스토어와 경쟁 이북 프로그램들간의 격전장이 될 것이 확실시 됩니다.

2010년 2월 1일 월요일

임원 전용 비행기가 기업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최근 몇 년간 읽은 논문 중에 학술적인 측면을 떠나 순수하게 제일 재미있었던 논문은 Yermack (2006)이다. 핵심은 임원 전용 항공기가 있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주식 수익률이 4%나 낮다는 것이다. 4%라면 항공기 운영경비를 감안해도 주가가 많이 낮은 편이다. 이런 낮은 주가는 경영자가 누리는 급여 외 부대 혜택 (예, 고급 사무실, 전용 차량, 골프장 이용권)와 관련되어 있었다. 즉, 전용 항공기와 같이 경영자가 누리는 각종 부대 혜택이 경영자의 대리인 비용 (agency cost)를 반영한다는 해석이다.

이 논문이 다시금 내 뇌리에 박히게 된 계기는 2008년 11월에 미국의 소위 Big 3 자동차 업체 (GM, Ford and Chrysler)의 CEO들이 의회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러 가면서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간 사건이었다. 세금으로 도와달라고 가는 사람들이 유유하게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갔으니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게 당연했다 (당시의 동영상). 논문의 결론처럼 전용 비행기가 대리인 비용으로 인한 비효율의 상징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Yermack, D., 2006. Flights of fancy: Corporate jets, CEO perquisites, and inferior shareholder returns.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80, 211-242.

홍콩에서 휴대폰 쓰면서 느낀 점 몇 가지

홍콩에서 2년 반 정도 살면서 휴대폰을 쓰면서 느낀 몇 가지를 써 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때와 차이점이 두드러집니다.

1. 저렴한 요금
우선 요금이 상당히 저렴합니다. 홍콩에는 이동통신사만 6개가 있어서 경쟁이 심한 것도 있고 지역이 좁아서 설비 비용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요금도 낮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홍콩의 GSM 방식이 우리나라의 CDMA와 다르다는 정도만 듣고, 아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2G폰을 쓰면서 3G폰을 지원하고 안쓰는 각종 서비스가 덕지덕지 붙은 2년계약을 맺어서 매달 150 홍콩달러 (지금 환율로 대략 2만 2천원)을 냈습니다. 나중에 보니 2G 계약은 무료통화시간이 적으면 한달에 50홍콩달러 이하도 있더군요.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돈이더군요.

그러다 재작년 말에 삼성의 풀터치폰 (한국의 햅틱폰과 비슷한듯)을 사면서 3G폰으로 바꾸었고, 몇 달 전부터는 한달에 110 홍콩달러 (대략 1만 6천원)를 내고 있습니다. 무료 통화시간도 충분하고 한달에 100MB까지 데이타 사용이 무료라서 이메일이나 간단한 인터넷은 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데이타 사용 없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요금을 냈었기 때문에 현재 요금에 대해서는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2. 언락폰(Unlock phone)
홍콩에서 휴대폰 사려면 우리나라처럼 통신사 대리점에서 보조금끼고 살 수도 있지만, 전자제품 매장에서 휴대폰이나 사서 아무 통신사 심카드라도 끼우면 바로 쓸 수 있습니다. 바로 전자제품 매장의 모든 휴대폰이 언락폰이기 때문이지요. 저도 최근에야 언락폰이 특이한 경우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홍콩은 외국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미국에서 나온 구글 Nexus One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언락폰이 미국에서도 특이한 거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중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중국도 언락폰이 대부분이라네요.

3. 다양한 신제품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된 것은 고작 몇 달 전이지만, 여기 홍콩은 벌써 몇 년이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아이폰 쓰는 사람을 자주 봤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안드로이드폰을 포함한 각종 스마트폰도 미국에서 출시된지 얼마 안되서 바로 매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Nexus One은 전세계에서 미국, 영국, 홍콩, 싱가포르 4개국에 우선 출시될 정도니까요.

4. 선불 심카드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지만 홍콩에선 선불 심카드가 판매됩니다. 제가 처음에 홍콩 왔을 때 한국에서 저렴한 언락된 GSM폰을 구입해서 왔던 것도 선불 심카드가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콩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편의점에서 선불 심카드를 사서 전화를 개통했지요. 물론 선불이라서 요금의 분당 단가도 1, 2년짜리 계약에 의한 요금보다 훨씬 높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선불 심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게 어딥니까?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선불 심카드가 상당히 저렴하더군요. 미국 출장가서 AT&T 선불심카드를 써 본 적이 있는데 통화품질은 형편없는데 가격은 홍콩보다 몇 배는 높더군요.

위의 네 가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동 통신사들이 꺼리는 거지요. 선불 심카드는 범죄 등에 악용될 우려가 있겠지만, 나머지는 결국 통신사 간의 경쟁이 부족해서라고 밖엔 설명이 안됩니다. 그러다 보니 경쟁이 심한 홍콩 이동통신시장이 좀더 소비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역시 경쟁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성공할 수 없을까?

몇 주 전에 "삼성이나 LG가 Palm을 인수하면 어떨까?" 하고 글을 올렸다. 멀티라이터님이 바로 며칠 뒤에 "삼성 소프트회사를 인수하는게 어떨까?"라고 하면서 Adobe를 인수대상으로 얘기했다. IT쪽 전문가분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아 잘 남기지 않는 댓글도 남겼다.

Adobe가 기술적으로는 더 시너지 효과가 좋을지 모르지만 Palm은 인수 예상비용면에서 월등히 싸게 먹힌다. 30% 프리미엄을 예상하고 50% 주식을 인수할 경우 Adobe는 14조원이 소요되는 반면 Palm은 1조 4천억원 정도만 소요된다. 기본적으로 Adobe는 흑자 기업인 반면 Palm은 최근 몇 년간 계속 적자를 내고 있어서 주가 차이가 많이나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댓글에서 삼성이나 LG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해도 그 기술을 제대로 활용을 못할 거라는 예상이었다. 상당수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분들이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에 질려서 나오는 반응인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대기업의 기업문화로서는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조차도 제조기업이 소프트웨어 회사와 합병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M&A가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벤처기업이 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하나같이 제조업이고 또는 간혹 서비스업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해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단기적으로는 합병보다는 주식 인수가 좋고, 인수나 합병에 앞서 주식교환 등으로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이 안드로이드폰을 만든다면 UI나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소프트웨어 회사와 함께 개발하는 것이다. HTC에 이어 심지어 모토롤라도 구글과 손잡고 구글폰을 개발하고 있다지 않는가?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가 독자적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도 스스로 대기업에 준하는 규모를 갖출 수 있고 다른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홍콩의 소득세 2

처음 오시는 분은 작년에 올린 홍콩의 소득세를 참조하세요.

어느덧 2010년도 첫 달이 지나갔다. 지난 달에는 세금 내느라 정말 힘들었다. 홍콩은 소득세 부담이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낮기 때문에 별 걱정 안하다가 이번에 크게 혼이 났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홍콩 소득세제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것 중에 하나가 원천징수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납세자가 알아서 세금낼 돈을 모아둬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세금내려고 저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각종 금융기관, 특히 카드회사에서 세금 납부를 위한 대출상품이 많다.

원천징수가 없는 건 홍콩 와서 금새 알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2년차에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홍콩은 과세년도가 매년 3월말까지이기 때문에 대략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홍콩에 처음 온 2007년 9월부터 그 다음해 2008년 3월까지의 소득에 대해 2008년 5월까지 소득 신고를 하고 9-10월 쯤에 확정된 소득세 고지서를 우편으로 받는다. 고지서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2009년 1월에 80% 정도를 내고 4월에 나머지를 내도록 산정되어 있다.

두번째 과세년도인 2008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에 대해서도 2009년 5월에 소득 신고를 했다. 신고가 굉장히 간단하기 때문에 납부할 세액까지 계산했고, 그 때부터 2010년 1월에 낼 세금을 조금씩 모아두기 시작했다. 실제 세액은 1년 소득의 대략 8% 정도으니 한 달 월급에서 대략 10% 정도를 세금으로 따로 모았다.

문제는 10월쯤에 소득세 고지서를 받았을 때 터졌다. 납부할 세액이 예상했던 금액의 거의 두배가 되지 않는가! 그 때서야 예전에 홍콩의 다른 학교에 계신 한국 교수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두번째 과세년도분 소득세를 낼 때에는 실제 확정된 세금 (2008년 4월 - 2009년 3월)뿐만 아니라 다음 년도 소득세 추계액 (2009년 4월 - 2010년 3월)이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실제 소득세를 내는 시기 (2010년 1월과 4월에 분할납부)에 다음 년도 과세년도가 끝나기 때문이란다.

소득세 확정신고하면서 계산한 세금만 준비했던 나로서는 갑자기 거의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물론 다음 년도 추계액이란게 나중에 확정신고하면 납부할 세액에서 감액하기 때문에 실제로 2중과세는 아니다. 그리고, 매년 같은 일이 되풀이 되기 때문에 3년차부터는 거의 1년치 세금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에는 거의 2년치 세금을 몰아서 내야하는 유동성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0월부터 저축이란 거의 한푼도 못하고 세금을 모아야 했다.

홍콩 법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회계학 하는 사람으로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를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세운 가설이 다음과 같다. 홍콩은 외국 사람들이 많이 일하기 때문에 귀국하는 마지막 해에 세금 안 내고 출국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홍콩 정부에서 이로 인한 손해가 과거 5년간 1억 4천만 홍콩달러 (우리돈 21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소득세 추계액을 납부하면 마지막 해에 해외로 튀어도 그 손실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왜 원천징수를 하지 않을까? 원천징수를 하면 납세자가 해외로 출국하더라도 고용한 회사쪽에서 세금을 월급에서 미리 떼 놓으므로 그런 문제가 없다. 더구나 납세자가 2년차에 세금 폭탄을 맞는 위험도 없다. 내가 세운 가설은 바로 고용주의 비용부담을 줄이자는 거다. 홍콩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헤리티지 재단이 공동으로 발표한 '2010년 전세계 글로벌 경제자유지수'에서 1위를 할 정도로 기업의 각종 부담이 적은 곳이다. 원천징수는 대기업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중소기업 특히 영세한 소기업에는 적지 않은 관리부담이다. 더구나 홍콩은 1인 기업이나 Paper company도 적지 않기 때문에 원천징수의무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영세기업에게는 원천징수 예외규정이 있지만 홍콩 정부 입장에선 그 자체가 기업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하다.

결국 내 생각엔 고용주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근로자의 납세 편의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동료 교수들 중에는 세금을 자신이 알아서 준비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천징수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이번 세금을 내면서 역시 원천징수 쪽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삼성이나 LG가 Palm을 인수하면 어떨까?

아이폰의 광풍 때문인지 어제 KBS 9시 뉴스에서 우리나라 스마트폰 산업의 현황과 문제점을 소개하였다. 역시 제일 큰 문제는 플랫폼과 어플리케이션을 포함한 소프트웨어의 부족이다. 삼성이 바다(Bada) 플랫폼과 앱스토어를 개시했지만 애플의 아이폰이나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인데 삼성이나 LG가 Palm을 인수하면 어떨까? Palm은 PDA분야에서 전통적인 강자였지만 PDA가 스마트폰에 밀려나면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에 괜챦은 스마트폰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엔 밀리는 형상이다. 만약 하드웨어 기술이 좋은 삼성이나 LG가 소프트웨어 특히 플랫폼과 어플리케이션이 다양한 Palm을 인수합병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인수가격인데 최근 Palm 주가는 12-13달러 선이고, 총주식수는 약 1억 7천만주 정도이다 (yahoo finance). 인수시 프리미엄을 감안해서 주당 15달러로 계산하고 50% 주식을 인수하다면, 오늘 환율 1125원 기준으로 약 1조 4천억원이 소요된다. 물론 20-30%의 주식만 인수하고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비슷한 효과를 노려볼수도 있다. 과연 이 정도 거액의 투자를 할 정도로 스마트폰 시장에 적극적일지는 의문이지만, 내가 삼성이나 LG 임원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전략으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솔직히 희망이 없으니까.

[추가] 2010년 4월 12일: 결국 Palm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Mashable의 기사). HTC, Lenovo, Dell 등이 관심을 보인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 왜 이러니?

집사람이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으로 하려고 하니 또다시 에러가 나서 안된다고 그런다. 이번에도 ActiveX 문제이거니 생각하고 기존에 설치된 모든 인터넷 뱅킹 관련 ActiveX를 모두 제거한 뒤 다시 설치했다. 그런데 여전히 로그인이 안된다. 이건 로그인을 클릭하면 보안프로그램을 재설치하라는 에러가 나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죽어버린다.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보안프로그램 삭제와 재설치를 몇 번이나 다시 해도 마찬가지여서 거의 포기상태였다가 네이버 지식검색을 통해 원인을 알아냈다. 지난 주에 새로 설치한 Eset Nod 32 백신과 충돌이 문제였다. 백신의 옵션을 조정해서 문제는 해결했지만, 인터넷 뱅킹의 ActiveX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가 언제 다시 발생할 지 모른다. 제발 좀 웹표준 좀 지키고 살자.